지난 주 2019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워싱턴 내셔널스의 금년 여정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시즌 초반 내셔녈스는 한마디로 죽을 쒔다. 5월 24일 당시 성적은 19승 31패. 최하위권으로 처지며 감독 경질설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부상선수들이 복귀하고 전력을 재정비하면서 서서히 치고 올라오더니 막판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며 승수를 쌓았다.
내셔널스의 정규시즌 성적은 93승 69패. 디비전 1위 자리는 놓쳤지만 리그 당 두 팀에 주어지는 와일드카드 진출자격을 얻어 턱걸이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까지의 과정은 롤러코스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지면 모든 게 그냥 끝나는 5차례의 탈락 위기에서 전부 승리를 거둔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와일드카드는 정규시즌에서 디비전 1위를 하지 못한 팀들 가운데 성적이 좋은 팀에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제도이다. 1994년 메이저리그가 이 제도를 도입하기 이전에는 정규시즌에서 디비전 우승을 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시즌 끝이었다.
하지만 와일드카드가 도입되면서 디비전 1위가 힘든 팀들도 실낱같은 가능성을 보며 시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게 됐다. 동기부여를 통해 긴장감과 박진감을 높이자는 게 메이저리그의 계산이었으며 이런 계산은 잘 맞아 떨어졌다.
일단 플레이오프가 시작되면 정규시즌 성적은 홈경기 어드밴티지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래서인지 어렵사리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팀들이 무서운 경기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와일드카드 제도가 도입된 이후 월드시리즈에서 와일드카드 팀이 우승한 경우는 이번 워싱턴 내셔널스를 포함해 모두 7차례나 된다.
기회가 제한될수록 힘을 쥔 사람이 유리하다는 건 불문가지이다. 그렇게 되면 경쟁은 별 의미가 없게 된다. 그러면서 세습이 고착화된다. 스포츠에서도 이런 현상은 예외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큰 시장과 자금력을 가진 대도시 연고팀들이 경쟁에서 우위에 선다. 하지만 와일드카드가 도입되면서 군소시장 팀들에게도 플레이오프 진출의 문이 좀 더 열리게 됐다.
와일드카드는 1등이 되지 못한 팀들에 주어지는 한 번의 추가적인 기회이자 배려이다. 기회의 창을 넓히면 경쟁의 역동성은 커지게 돼 있다. 그래서 와일드카드는 사회적으로도 꼭 필요한 시스템이다. 그래야 패자들과 약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미국은 그래도 이런 배려의 문화와 시스템이 어느 정도는 존재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한 번의 낙오는 곧 인생의 실패라는 강박이 만연해 있는 살벌한 사회다. 현실 또한 이런 인식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조국 사태를 계기로 공정성과 기회의 균등에 대한 젊은이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입시제도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논란이 보여주듯 평등과 공정의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낼 수 있는 묘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불리한 출발선에 서있는 경쟁자들에게 모든 분야에서 조금씩 더 기회의 창을 열어줄 수는 있다. 잠재력은 말 그대로 아직은 꽃을 피우지 못한 능력이다.
와일드카드는 잠재력에 대한 배려이며, 그런 기회가 주어질 때 1등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마지막 승자가 될 수 있다. 내셔널스는 이것을 멋지게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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