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기사들 가운데 살찐 사람은 없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내로라하는 프로바둑 기사들을 보면 체격이 하나같이 호리호리하다. 바둑선수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보내고 운동할 시간도 거의 없을 텐데 뚱뚱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뭘까.
최근 ESPN이 내보낸 특집기사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바둑과 유사한 정신스포츠인 체스 선수들의 경우 시합기간 중 하루에 무려 6,000칼로리까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이다. 성인들의 하루 평균 소모 칼로리의 3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치다.
정상급 체스 선수들의 이런 에너지 소모량은 선수들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들어할 정도다. 지난 1984년 세계 체스 챔피언십은 48경기를 치른 후 대회 시작 5개월 만에 취소됐다. 챔피언 아나톨리 카르포프의 체중이 무려 22파운드나 줄어 더 이상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한 해설자는 “마치 시체 같았다”고 그의 몰골을 묘사했다.
2004년 챔피언 루스탐 카심자노프 역시 챔피언이 되는데 17파운드의 체중 감소를 감수해야했다. 미국의 의료관련 기업인 ‘폴라’는 지난해 10월 21세의 러시아 체스 그랜드마스터인 미하일 안티포프의 심장박동 추적을 통해 그가 가만히 앉은 채 두 시간 체스를 두는 동안 560칼로리를 소모했음을 밝혀냈다. 이는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가 한 시간 단식경기를 할 때 소모하는 것과 같은 칼로리다.
스탠포드 대학의 스트레스 전문가인 로버트 사폴스키는 “체스를 두는 수 시간 동안 그랜드 마스터들의 혈압은 정상급 마라토너들 같은 수준으로 상승한다”며 이는 하루 평균 2파운드, 10일 정도 토너먼트면 10~12파운드 정도 체중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체스에 몰두하다 보면 음식 생각을 덜 하게 돼 이래저래 체중이 크게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정신활동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사실은 이미 정설로 굳어져 있다. 뇌는 사람 몸무게의 2% 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뇌가 소비하는 에너지는 전체의 20%에 달한다. 엄청난 비율이다. 일상적으로 사고를 하는 과정에서 약 320칼로리를 소모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뇌는 많은 에너지를 쓰고 특히 격렬한 지적활동을 하는 경우 더 많은 포도당을 소모한다. 우리가 책읽기나 공부에 몰입하고 난 후 배고픔을 느끼게 되는 건 이 같은 에너지 소모 때문이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 평균 4시간 정도의 근무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연구결과들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뇌를 더 많이 사용해 체중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법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 뇌 활동에 따른 에너지 소비는 순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를 평소보다 많이 사용해도 늘어나는 에너지 소모는 기껏해야 5% 정도다. 단 당신이 장시간 고도의 집중력으로 뇌를 격렬하게 사용하는 정상급 프로 체스선수나 바둑기사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정신운동만으로 날씬해지기는 힘들어도 신체운동과 함께 뇌를 열심히 사용하는 활동을 병행한다면 다이어트에 도움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칼로리도 소모하고 뇌의 퇴화도 막을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