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회오리와 폭염·홍수의 기상이변, 그치지 않는 총기난사의 뉴스 폭주 속에 금년에도 파묻혀버리긴 했지만 노동절 이후 9월의 첫 일요일은 미국의 ‘조부모의 날’이다.
60년 결혼생활에서 15명의 자녀와 손주 43명, 증손주 10명, 고손주 1명을 둔 웨스트버지니아 여성 매리앤 맥퀘이드의 풀뿌리운동에서 시작되어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전국 기념일로 선포했다. 조부모 시기가 ‘생의 가을’이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9월을 택했다고 한다.
조부모 역할 증대는 전문가들이 지난 몇 년 거듭 지적해온 미국의 가장 뚜렷한 사회현상의 하나다. ‘생일카드와 허그를 넘어:‘집중 조부모 노릇(Intensive Grandparenting)’ -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의 최근 특집도 변하는 미국 조부모의 다양한 역할을 조명하고 있다.
2018년 ‘가족저널’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미국 내 어린이의 약 50%, 초등학생 연령의 35%, 10대의 20%를 매주 일정시간 조부모가 돌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고령자협회(AARP) 2018년 서베이에선 조부모 38%가 자신을 ‘베이비시터’로 생각했다. 1998년엔 8%였다.
날로 증가하는 워킹맘의 자녀양육을 도와줄 정부나 고용주의 제도적 지원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3세 이하 자녀의 일하는 엄마는 1975년 34%에서 2016년 65%로 늘었는데 미 연방정부엔 세계 127개국에서 시행 중인 유급 가족병가법도 없다.
현재 50~64세 미국인의 절반, 65세 이상의 83%가 조부모인데 전통적인 가족형태가 바뀌면서 ‘조부모’도 훨씬 다양해졌다고 마다나 메이어스 시라큐스대 교수는 지적한다. 우선 조부모의 나이가 30세 이하부터 100세 이상까지 제각각이고, 손주의 숫자도 이혼과 재혼 등 복잡한 관계 확대로 정확히 세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조부모의 전형적 이미지도 진화하는 중이다. 흔들의자에 앉아 쉬거나 쿠키를 굽는 백발 노인에서 브리프케이스와 랩탑을 들고 출근하는 활기 찬 장년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50세 미국인의 절반이 조부모인데 그들의 75% 이상이 취업 중이니 당연하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이 전부였던 조부모의 업무 역시 숙제 지도에서 각종 레슨 라이드까지 확대되었다.
일하는 엄마들이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줄타기 하듯 일하는 할머니들도 손주 돌보기와 일 사이에서 역할 균형에 애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안팎으로 스트레스가 누적된다. 손주 돌보기 스케줄에 맞춘 업무시간 조정부터 자녀와의 육아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이고, 관절이상에서 피곤까지 체력의 한계에 직면하기도 한다.
대부분 수입이 한정된 조부모들에겐 재정적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기저귀 값부터 렌트, 레슨비에 이르기까지 이것저것 메워주느라 많은 중산층 조부모들도 여행을 취소하거나, 대출을 받거나, 은퇴를 늦추는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메이어스 교수는 지적한다. AARP조사에 의하면 매년 조부모들이 손주들에게 쓰는 돈은 1,790억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온갖 스트레스에도 불구 ‘보람’은 확실한 듯하다. 상당수 조부모들이 손주들과 시간 보내기를 ‘노년의 가장 소중한 것’ 1위로 꼽았다. 퓨조사 결과다. 특히 육아 충고를 무시하는 자녀로 인한 스트레스보다는 ‘손주의 허그’에서 얻는 기쁨이 훨씬 크다는 할머니들이 많았다.
올해 조부모의 날을 그냥 놓쳤다면 내년, 2020년 9월13일을 기억하면 된다. 카네이션이 어머니날을 상징하듯, 이날의 꽃은 ‘나를 잊지 마세요’란 꽃말을 가진 물망초(forget-me-not)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자식교육을 재대로 해야지, 사랑만 해주다가 용돈끊었다고 머리에 총맞은 아버지이야기 며칠전에 실렸던데.... ㅉㅉㅉ
인류의 가장 본능적인 아름다운 모습이 어머니의 자식 사랑, 할머니의 손주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노인들을 더욱 활기차게 만든다. 원하던 원치않던 수명이 늘어난 시대이니 그 댓가를 치르면서 살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