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님이라 부르기도 부끄럽던 새색시 시절
세상을 떠난 당신께
편지 한 장 고이 적어 보내고 싶었습니다
혼자 남겨진 세상살이 어찌 살아왔는지
적어 보내야지, 보내야지 하다가
여든다섯이 되었습니다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늦깎이 공부를 하니
어깨 너머로 배운 글이 많이 서툽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정갈한 편지 한 장 써보겠습니다
이경례 할머니 지음

김종성 ‘alive’
김용택 시인이 편집한, 글 모르던 할머니들이 글을 배워 쓴 시 모음집 ‘엄마의 꽃시’에 실린 시이다. 새색시 시절에 혼자 남겨져 힘들고 고달플 때마다 먼저 훌쩍 떠나버린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 모든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할머니는 이 시 하나를 드린다. 그저 정갈한 편지 한 장 써보고 싶다는 특별한 내용도 없는 시지만 눈물겹게 독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딱히 사랑이랄 수도 원망이랄 수도 그리움이랄 수도 애절함이랄 수도 없는 빛나는 고귀함이 여기 있다. 지난 세월의 고락들이 영혼의 깊이에서 능선처럼 고요해진 생은 힘겨웠던 만큼 아름답다. 함께 하지 못한 부부, 영원한 바다의 선원처럼 돌아오지 못한 쪽, 그 어떤 사랑으로도 함부로 말하여 가름할 수 없는, 드디어 고귀한 순정이 되어버린 그 세월의 끝 무렵. 팔십 오세 할머니의 마음이 첫 마음처럼 곱다.
<
임혜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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