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미국의 1세 이민사회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예가 많다. 문제가 터져도 공권력이 언어와 문화장벽을 뚫고 개입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지만, 당국도 ‘지네들끼리 그러는데 뭘’, 알고도 모른 체 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하기도 한다. 유럽이민 중에서도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후발주자 이민사회가 같은 과정을 거쳤다.
주류사회에서 벌어졌다면 쇠고랑을 찼을 일이 울타리 안에서만 시끄럽다가 두루 뭉실 넘어가는 일이 적지 않다. 한인이민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심판이 없는 역사는 일제의 잔재 청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것인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그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한인사회의 해묵은 문제 중 하나는 단체들의 재정비리다. 90년대 말에는 남가주에서 어느 장학재단 비리가 터져 나왔다. 한국정부 돈은 미국에만 들어오면 눈먼 돈이 되는 것인지, 그 재단의 재원도 한국정부 지원금이었다.
당시 드러난 운영실태가 가관이었다. 한 명에 500달러인 장학금이 어느 이사의 딸에 이르자 3,500달러, 그 다음 해에는 또 다른 딸이 3,500달러를 받아 갔다. 장학생 중에는 중년여성도 포함돼 있었다. 어느 이사의 인척으로 한의과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한인단체 대표들도 버젓이 장학생 명단에 올라 있었다. “우리 행사 때 테이블 하나를 사 주셨으니, 이번엔 우리가-“ 하면서 장학재단이 단체 대표를 장학생으로 올려 품앗이를 한 것이었다.
그때 처음 주 검찰에 비영리기관의 비리를 감찰하는 기능이 있음을 알았다. 담당 검사와 접촉했다. 검사는 관련된 모든 정보와 자료를 요청했지만 개인이 일일이 협조요청에 응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몇 년 전에는 한 청소년 단체에서 공금횡령 의혹이 터져 나왔다. 커뮤니티가 들끓었다. 의혹 당사자는 퇴진했지만 그것으로 끝.
끝까지 책임을 따져 묻지 않는 ‘자비의 전통’은 되풀이 됐다.
비영리기관에 이런 일이 터지면 그 당사자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이사들은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영리기관이든 비영리단체든 이사들에게는 수탁관리인의 의무(Fiduciary Duty)가 있기 때문이다. 그 기관에 대한 충실의무와 주의의무가 요구되기 때문에 이를 소홀히 했다면 특히 면세 등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비영리기관의 관계자들에게 묻는 책임은 더 엄중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앞의 단체의 이사 중에는 변호사들도 있었으니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 좋다는 은행 이사를 스스로 물러난 사람이 있다. 은행이 잘못 됐을 경우 돌아올 책임 문제가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문을 닫았던 한 한인은행의 이사들은 그 후 곤욕을 치렀다.
지금 남가주 한인사회에는 특정단체의 운영과 관련해 검찰력이 개입하거나 형사고발이 거론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인사회에 자체 해결능력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반복되는 부조리의 사슬을 끊으려면 적극적으로 공권력의 개입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인 1세 이민사회도 이제 법의 사각지대에서 법치의 광장으로 나와야 할 때가 됐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