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황제’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71)가 지난달 공식 은퇴했다.
로버트 파커가 누군가. 전 세계 와인업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음전문가이며, 그가 매기는 RP점수에 따라 곧바로 와인 가격이 오르고 내릴 정도로 막강한 팔레트를 가진 사람이다. 파커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파커화된’(Parkerized) 와인을 만든다는 말까지 나온 신화적인 존재, 한 분야에서 한 사람의 평가가 이처럼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파워를 갖는 일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파커는 원래 변호사였으나 와인에 대한 사랑을 끊을 수 없어 와인비평가로 변신했다. 그가 처음 와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67년 크리스마스 무렵, 프랑스 알자스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여자친구(아내 패트리샤)를 만나러 갔을 때였다. 와인의 미묘한 향과 맛에 빠진 그는 이후 틈날 때마다 와인을 마셨고 보르도 등 와인 산지를 찾아다니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미국인들은 와인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이라 프랑스에서는 미국인들이 달고 싼 와인을 찾는다며 조롱하는 분위기였다. 파커는 소비자에게 믿을만한 와인 정보를 주는, 업계의 영향력이 배제된 컨수머 가이드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78년 ‘와인 애드보키트’(Wine Advocate) 매거진을 처음 발행했다. 이때 100점 만점의 점수제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와인 맛을 숫자로 평가한 세계최초의 시도였다. 당시 업계에서는 와인 맛을 점수로 매기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크게 반발했으나 소비자들은 즉각적인 호응을 보였고, 결과적으로 지금은 누구나 와인 평가에 점수를 매길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그가 처음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1982년산 보르도 와인 시음 때문이었다. 83년의 배럴 테이스팅에서 다른 전문가들은 82년산이 장기숙성 할 수 없다고 평가했는데 파커만이 극찬을 보내며 독자들에게 가능한 한 많이 사라고 권장했다. 당시만 해도 한산하던 보르도에 달러가 쏟아져 들어왔고, 얼마 안가 82년산은 ‘세기의 빈티지’로 밝혀지면서 그 가치가 치솟았다.
구독자 600명으로 시작된 격월간 ‘와인 애드보키트’는 현재 37개국에서 5만여명이 구독하고 있으며 아직도 광고 없이 발행된다. 그 정도 영향력이 대단하면 업계의 청탁이나 타협에 약해지기 쉬울텐데 한결같은 ‘청렴결백’의 원칙이 파커가 오랜 세월 명성을 유지해온 이유다.
지난 40년간 세계 각국의 유명 와인잡지와 매체들에 비평을 써왔고, 베스트셀러 14권을 저술했으며, 프랑스의 가장 명예로운 2개의 훈장(내셔널 메릿, 레종도뇌르)과 이탈리아의 코멘다토레 메릿 훈장,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국왕이 수여하는 민간인 최고의 명예훈장을 받았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빨리, 많이, 정확하게 시음하고, 코와 혀가 100만달러 보험에 들어있는 것으로 유명한 파커는 수년전부터 단계적으로 은퇴를 준비해왔다. 2012년 ‘와인 애드보키트’ 편집장에서 물러났고 잡지 지분을 매도했으며(미슐랭이 40% 인수) 버건디,캘리포니아, 보르도 레드와인의 비평을 순차적으로 후배들에게 넘겼다. 현재 이 잡지는 세계 각 와인 산지를 커버하는 10명의 전문팀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파커의 사생활은 알려진 것이 별로 없지만 한국서 입양한 외동딸 마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가 남은 생애 자신만을 위해 맛있는 와인을 실컷 즐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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