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소 펜실베니아 주립대 응용언어학 박사과정
“하은씨는 말하고 싶은 걸 말할 때 눈빛이 달라져요.” 몇 년 전 한국에서 영어 말하기 수업을 했을 때 만났던 학생인 하은(가명)씨에게 내가 했던 말이다. 그는 말이 많지는 않지만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에는 눈빛도 목소리도 표정도 변하던 분이었다. 그가 말하는 영어단어 하나하나에는, 이파리는 바람에 흔들리지만 뿌리는 땅 속에 굳건히 내린 들풀 같은 결의가 전해져 왔었다.
그는 수업이 종강할 때쯤 긴 메시지를 내게 보내왔다. 지금까지 자신은 다른 사람을 거울처럼 비추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었다고. 그런데 내게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자신도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처음 받게 되었다고. 내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자아상을 바꾸어 놓을 줄이야.
그로부터 2년 후에 나는 학교 심리상담 센터에서 상담사와 마주앉아 있었다.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후에 다시 지원서를 쓰는 동안 이걸 아무리 써 봤자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아 우울해지고, 박사논문을 쓸 때는 “이런 거 열심히 써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데…”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헤매고 주저앉는 나날들이 반복되고는 했다. 그러면서도 해야 한다고, 랩탑을 붙들고 앉아 멍하니 의미 없는 글자를 쓰다가 전부 지워버리곤 했다.
깊은 물속에 빠지면 어느 쪽이 수면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된다고 한다. 살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수면 쪽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어 버린다고. 나는 글자 속에 빠진 것 같았다. 지원서와 논문의 빼곡한 글자 속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렸고, 내가 쓴 글자가 나를 질식시켰다. 아등바등하고는 있지만 어디로 나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수면이 어딘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맞은편의 상담사가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대화가 좀더 오간 후에 상담사가 말했다.
“미소 씨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눈빛이 달라져요”
분명히 2년 전의 내가 하은 씨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명사구 두 개만 다를 뿐. 내가 했던 말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나에게 되돌아왔다. 말을 해 준 사람은 상담사였지만, 2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내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왜 내가 지원서와 논문을 쓰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지원서와 논문 속에 파묻혀 있을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연결 지어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인생은 고통의 굴레를 떠안고 사는 일이라고 느꼈었다. 이 고통이 끝나면 다음 고통이 오겠지… 해탈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원서도 논문도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사진을 너무 확대하면 깨진 픽셀만 보이지만 다시 축소하면 전체의 구도가 보인다. 지원서도 논문도 그랬다. 너무 가까이서 보면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지만, 좀더 넓게 보면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픽셀 하나하나였다.
수면이 어디인지 마침내 찾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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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소 펜실베니아 주립대 응용언어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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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소씨, 화이팅!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