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토론토에서 열리는 미국 교육학 학회에 참석했다. 이 학회는 미국에서 제일 큰 학회로 교육학과 관련된 모든 전공자들이 모여 각자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학회는 다운타운의 노른자인 메트로 센터에서 열렸고, 나는 허락된 예산안에서 모든 비용을 충당하고자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공동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매일 아침 약 4마일 정도를 걸어서 학회 장소로 향했다. 차이나타운을 지나 왕과 여왕의 대로라고 불리는 길을 걸으면 건물의 높낮이가 바뀌고, 도로의 아스팔트 상태가 달라지고, 거리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의 종류가 바뀌고, 또 식당 메뉴의 가격이 달랐다.
이런 도시의 풍경이 변하는 모습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듯 펼쳐졌다. 시골 장터에서 많은 아시안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야채를 사고파는 장면에서, 도시의 직장인들이 팀호튼 커피를 들고 오피스를 향해 걷는 장면까지, 시골과 도시가,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교차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작 4마일 안에서.
학회 장소에 가면 유럽과 한국, 미국 각 주에서 온 교육학자들이 각자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학자들은 주로 호텔과 학회장을 오가면서 학구적인 대화를 주고 받았다. 사회환경적인 요소가 어떻게 교육의 기회를 방해하고 불평등을 재생산하는지, 유리천장 효과가 어떤 심리적 상태를 고착시키는지, 학자들은 설문과 인터뷰의 결과를 뽑아 분석하고 질문하고 서로를 비판하고 또 격려했다.
하루 동안 논의된 사회학적인 문제들, 그리고 교육의 현안들을 머리에 잔뜩 담아, 다시 4마일을 걸어 숙소로 돌아가면 부의 분배와 기회의 평등이 이론을 넘어서 시각적으로 보였다. 메트로 센터의 찬란한 빛을 시작으로 숙소 근처에 가면 어두운 길과 후미진 골목, 그리고 거리의 부랑자의 수가 늘어나는 걸 보았다. 고작 그 4마일 안에서.
문득 그 4마일의 여정 가운데, 편안한 호텔을 오가며 노트북으로 사회 정의와 분배와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장하는 이 학회가 지역주민과 소상공인 경제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디자인된다면 어떤 형식과 모양으로 진행이 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생각을 타 학교의 박사생과 나누었다. 미국 박사생은 “사람들의 필요에 반응하는 학회에 대해 고민하는 건 의미 있다”고 이메일을 주었다. 나는 “더불어 교육학회가 추구하는 이론과 실체, 그리고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라고 논의를 확장했다. 또 다른 친구는 “결국은 너도 선비같이 상상만 하는거 아니냐” 한마디 했고, 나는 “맞다”고 동의했다. 부족한 대학원의 예산이 도리어 고민을 풍성하게 한 경우다.
찬란하고 영롱한 이론적인 논의와 명석한 두뇌의 모임이 현장의 4마일의 격차를 4밀리미터라도 줄일 수 있도록, 조금 덜 사용하고 더 불편하지만 조금 더 의미 있게, 지금 여기서 아주 쬐끔이라도. 지역 주민들과 의미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그래서 매년 학회가 열릴 때, 지역 주민에게 환영받는 학회가 된다면, 혹은 함께 참여하는 학회를 디자인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 일까- 감히 상상해 보았다.
학자는 현장과 유리되어 유리천정 같은 사각지대가 생기고 입과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으로 만들어내는 많은 좋은 주장들이 삶으로 살아내는 태도와 만나 아주 조금이라도 이론과 실체와 마음이 학회에서 만난다면 어떨까?
그 4마일은 익숙한 학회를 낯설게 했고, 또한 낯선 생각을 익숙하게 하고도 남을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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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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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