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기 금융보안원장
금융권에서 디지털 변혁(digital transformation)은 미래 생존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 됐다.
핀테크 기업과의 합종연횡, 인공지능(AI)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 신기술을 활용한 각종 금융서비스 접목 등 금융회사들은 분주하다. 혁신조직을 만들고 빅데이터를 분석해 챗봇이 상담을 하거나 로보어드바이저가 자산관리를 돕는 것이 새롭지 않다.
한동안 ‘축적의 시간’이라는 책이 우리 사회에 많은 경종을 울렸다. 모든 가치사슬을 지배하는 ‘창조적 개념설계’ 역량은 단시간 내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시행착오와 실패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확보되며 국가적 차원에서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를 이행하기 어려운 큰 것 중 하나는 책임문제 때문이다.
한국은 큰 사고가 발생하면 반드시 책임 소재를 따지고 처벌이 수반된다. 한동안 공직사회에는 일을 하게 되면 사후에 반드시 책임질 일이 생긴다고 해 가만히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는 복지부동(伏地不動)·복지안동(伏地眼動)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감사원법에서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적극적인 업무처리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적극행정 면책제도도 규정돼 있으나 이를 믿는 공직자는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대과 없이’ 현직을 마무리하는 것을 최대 과제로 여기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사고와 행동이 안전 위주로만 흐르면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위대한 기업도 지속적인 혁신을 시도하지 않으면 새롭게 닥쳐오는 혁신의 물결에 무너질 수 있다.
국가 경제도 그러하다. 도전과 실패의 경험을 축적하는 문화는 말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실패를 단죄하는 데 몰입하다 보면 혁신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제자리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변혁은 리스크를 동반할 뿐만 아니라 성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자율과 창의를 장려하고 미래를 창조한다 하지만 책임회피 관행이 단단하게 뿌리박고 있는 한 현실은 한 걸음 앞서기도 쉽지 않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도 대부분 임기가 3년, 길어야 연임 이상을 넘기기 어렵고 그마저도 매년 평가를 받는다. 단기 성과에 목을 매고 사후책임에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불확실한 프로젝트에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일정비율 이상의 예산을 혁신 사업에 반드시 투자하도록 하고 선의의 실패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 ‘혁신책임불문제도’라도 만들면 어떨까. 혁신을 촉진하는 정책적 인센티브나 정부의 마중물 역할도 적극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민간 스스로 혁신이나 모험자본이 선순환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실패의 경험은 사회적 자산이며 성공으로 가는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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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금융보안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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