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유학을 와서 한동안 핸드폰의 디지털시계를 사용했다. 핸드폰 시계가 아침에 재깍 깨워주어 참 고맙지만, 동시에 내 삶의 리듬과 맞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바쁜 아침에 바뀌는 숫자에만 집중하다 보면, 식사는 그냥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로 끝나기 일쑤였다.
디지털시계는 초와 분 사이의 리듬이 보이지 않아 숫자가 전환되는 찰나, 마음이 조급해졌다. 특별히 숫자와 숫자 사이의 간격은 상상의 여지가 없어, 삶이 시간의 감옥에 갇힌 느낌이었다.
이후 나는 아날로그시계를 사용하며, 시간이 그리는 동그란 곡선의 틈을 좋아하게 되었다. 초침과 분침이 활짝 펼치는 간격은 생각의 여유를 줬다. 약간은 빠르게 혹은 느리게, 사이의 공간을 유영하며 나만의 리듬을 창조했다.
그렇게, 유학 1년차 생일선물로 내가 나에게 준 하얀 12달러짜리 손목시계는 귀엽게 째깍 거리며 나의 시간을 세상의 시간에 연결시켜 줄뿐 아니라, 나의 리듬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지켜줬다. 하얀 손목시계의 초침과 분침은 텅 빈 하루라는 캔버스 위에 그리는 내 꿈의 내용이고, 내 춤의 리듬이었다.
바야흐로 지금은 박사 말년 차가 되어 졸업논문을 쓰며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졸업 후 무엇을 할까 어디로 가나 생각을 하면 참 막막하다. 교수님들은 객관적인 상황을 꼬집어 말한다. “항상 어려웠지만 지금은 더 어렵네.”
실제로 공고로 올라온 자리가 많지 않다. 꽤나 성과 좋은 친구들도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이 마비된다”고 할 정도로 알 수 없는 미래는 누구에게나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어느 무기력한 주말, 시간을 정지시키기 위해 어두운 방에 하루 종일 누워 달력의 하루를 장사 지냈다. 물론 종국에는 소극적인 반항을 털고 다시 일어나 세상의 시간을 준비해야 했다.
초침과 분침 사이에서 춤을 추던 나도 보다 먼 인생의 시계를 대할 때 막연했다. 현재가 미래를 만들고, 또 그 미래가 절벽과 같이 다가와서 종국에 나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한다는 친구와의 대화는 일종의 강박으로 다가왔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이층에서 일층으로 떨어지는 원리와 같이, 미래는 현재에 한 톨의 무게로 매일 쌓이며, 막연한 두려움을 줬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상상은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의 차이가 아니었다. 결국, 메타포의 차이였다.
“오늘은 어떤 메타포가 나를 지배하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메타포가 나에게 영향을 준다면, 미래를 공허한 진공이 아닌 내가 그려가는 그림으로 상상하고 싶다. 전전긍긍하며 꿈을 사장시킬 바에는 물감이라도 튀기며 추상화를 남기고 싶다.
빨간 머리 앤의 말이 생각난다. “앞일을 생각하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실망을 하지 않으니 다행이지‘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앤 같이 시간의 캔버스에서 기쁨의 춤을 추며 앞일을 기대하고 싶다. 세상의 흐름에 나의 춤을 발맞출 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걸음을 배우며 더 성장하고 싶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조건은 바꿀 수 없어도, 나의 메타포는 내가 선택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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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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