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 8.15, 8.29. 8월15일은 무슨 날인지 모두 안다. 7월31일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일본제국의 강압에 따라 군대해산을 명령한 치욕의 날이다. 그해가 1907년이다.
그보다 일주일여 전 대한제국은 한일 ‘신협약’이란 것을 체결했다. 그 비밀 각서에 따라 내려진 조치로 대한제국의 군대는 황제호위를 위한 근위부대(1개 대대)를 제외하고 전원이 해체된다. 그리고 3년 후인 1910년 8월29일 대한제국은 멸망한다. 8.29는 국치일(國恥日)이다.
해산된 대한제국의 장병들은 그러면 어떤 운명을 맞았나. 대부분 의병(義兵)이 된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게 되라지요. 일본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유로운 몸으로 죽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당시 한 영국신문이 항일전선에 뛰어든 대한제국 장교출신의 젊은 의병지휘관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한국인에게 가장 수치스런 역사는 주권국가에서 일본식민지로 전락해가던 대한제국 말이다. 그 치욕의 망국사 가운데에서도 한 가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존재가 있다. 의병들이다.
처음 의병이 일어난 해는 1895년으로 유생(儒生)들이 그 주역이다. 그러나 1년도 못가 급격히 위축된다. 전력이 약한 탓도 있지만 유생 의병장들이 지닌 이념적 한계성 때문이다.
그들의 침략자에 대한 증오감은 대단히 높았다. 그러나 이념적 토대는 ‘충군존왕(忠君尊王)’으로 민중을 단순한 동원 대상, 지배의 대상으로만 파악했다.
1896년의 김백선 사건이 바로 유생의병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김백선은 평민 출신으로서 유인석 부대의 선봉장을 맡아 여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 김백선이 이끄는 부대는 가흥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게 된다. 이 때 김백선은 양반 출신인 중군(中軍) 안승우에게 증원 군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증원군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하고 돌아온 김백선은 안승우에게 강경히 그 책임을 추궁하자 유인석은 김백선이 평민으로서 양반에게 불경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한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농민출신 의병들은 대중항쟁 식으로 노선전환을 꾀한다. 1905년 노일전쟁을 기점으로 다시 불붙은 의병활동은 보다 대중성을 띄며 국권회복운동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조치 이후에는 대한제국 장병들이 의병에 합류함으로써 국권방위 전쟁성격을 띄게 되고 망국과 함께 의병은 구국항쟁의 독립군으로 변신한다.
“저물어 가는 조선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모두의 이름은 의병이다. 원컨대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넷플릭스를 통해 미국인의 안방에도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포스터 문구다. 한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시대를 드라마의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과거에 눈을 감으면 미래를 볼 수 없다.”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자랑스러운 역사는 물론 수치스러운 역사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제작진에게 갈채를 보낸다.
그리고 가능하면 보다 정확한 역사고증과 함께 의병을 지나치게 미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그 시대상황에서 번민하지만 결국 자유인이 되고자 목숨을 걸고 분투하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의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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