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애틀 대교구서 16년간 사역하며 위업 이뤄
지난 1975년부터 1991년까지 천주교 시애틀 대교구를 이끌며 동성애자 권리, 여성역할 확대, 핵무기 폐기 등 당시로서는 예민한 이슈들의 투쟁에 앞장섰던 레이몬드 헌트하우젠 대주교가 지난 22일 고향인 몬태나주 헬레나에서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헌트하우젠 대주교는 “항상 조용하고 말소리가 부드러웠으며 신도들의 말을 경청했고 그들을 섬기는데 앞장섰으며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경외한 사람”이었다고 존 맥코이 전 시애틀대교구 대변인이 말했다. 그는 “프란시스 교황이 요즘 강조하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헌트하우젠 대주교는 이미 20~30년 전에 실천에 옮겼다”고 덧붙였다.
몬태나주 아나콘다 태생인 헌트하우젠 대주교는 헬레나의 캐롤 대학을 거쳐 워싱턴주 켄모어의 St. 에드워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46년 신부임직을 받았다. 그는 모교인 캐롤 대학으로 돌아가 화학을 가르치다가 1957년 총장이 됐고, 1962년 헬레나 교구 주임신부로 임명됐으며 13년 후 시애틀교구 대주교로 승진됐다.
헌트하우젠 대주교가 재임시 설립한 가톨릭 커뮤니티 서비스는 서부 워싱턴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비영리 사회복지 기관으로 성장했다. 시애틀대학교(SU)는 산하 신학대학에 그의 이름을 붙였으며 시애틀의 성 제임스성당은 저소득층 근로자들의 주거문제를 지원하기 위한 헌트하우젠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헌트하우젠 대주교는 워싱턴주 뱅어 해군기지의 트라이덴트 잠수함에 장착된 선제공격용 핵무기에 반대하며 소득세 절반 납부거부 캠페인을 주도하다가 1982~83년 국세청으로부터 봉급 압류통보를 받고 밀린 세금 800달러를 토해낸 일화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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