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자판기의 나라다. 도시 길거리나 버스 정류장 등 사람이 많이 지나는 곳은 물론 한가한 농촌 밭 한 가운데서도 우두커니 서 있는 자판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렇게 자판기가 많은 이유를 일본의 높은 인건비와 안전 때문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처럼 편의점 유리창을 차로 들이받고 현금 인출기를 통째로 훔쳐 가는 곳에서는 자판기가 널리 보급되기 힘들다.
일본인의 라멘 사랑은 유별나다. 중국 명나라 때 산시성에서 탄생한 라면은 일본에 들어와 ‘라멘’이 됐다. 한국 사람도 라면을 좋아해 1인당 소비량이 세계 최고지만 이는 거의 전부 인스턴트 식품이다.
반면 일본에서 라멘은 엄연한 요리다. 된장을 베이스로 한 홋카이도 사포로의 미소 라멘과 돼지 뼈 국물을 수프로 한 규슈 하카타의 돈코츠 라멘을 양대 산맥으로 각 지방마다 독특한 라멘을 만들어 내고 있다. 도쿄는 일본 간장 소유를 사용하고 오사카는 다시마와 뱅어포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인의 자판기와 라멘 사랑이 결합한 것이 자판기 라멘이다. 일본의 라멘 가게 중에는 주문과 결제를 사람이 아니라 자판기가 하는 곳이 많다. 메뉴를 보고 원하는 라멘을 골라 돈을 넣은 후 버튼을 누르면 티켓이 나온다. 이를 직원이나 요리사에게 주면 라멘을 가져다준다.
이런 가게의 특징은 물가가 비싼 것으로 유명한 일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보통 한 그릇에 800에서 900엔(8에서 9달러 미만) 정도고 경우에 따라서는 500엔, 심지어는 350엔짜리도 있다. 세금도 팁도 없다.
값이 싸다고 내용이나 양이 형편없을 것으로 짐작한다면 이는 착각이다. 일본 라멘 집은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해도 수십 년 전통에 빛나는 곳이 많다.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정성은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싼 가격에 양질의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판기 시스템에 있다. 보통 한국 식당에서 웨이터나 웨이트리스는 다섯 번 정도 손님 테이블에 온다. 처음 주문을 받기 위해, 다음에는 음식을 나르기 위해, 그리고는 돈을 받기 위해, 다음에는 거스름돈을 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음식을 치우기 위해 와야 한다. 그 중간에도 반찬을 더 달라, 물을 더 달라는 등 손님 요구에 수시로 불려 다녀야 한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손님 돈을 계산할 캐시어가 필요하다.
이를 자판기 시스템으로 바꾸면 인력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캐시어가 주인 몰래 돈을 떼어 먹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할 필요 없다. 오로지 어떻게 음식을 잘 만들까만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같은 음식을 수십 년 만들다 보면 어떻게 하는 것이 원가를 최대한 낮출 수 있는 지에 대한 노하우는 자연히 쌓이게 돼 있다. 이런 이유로 일본 라멘 집은 값싸게 양질의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손님들에게도 편리하다. 웨이트리스 서비스가 좋으니 나쁘니 투덜거릴 필요도, 팁을 얼마나 줘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왜 계산서를 빨리 가져오지 않느냐고 따질 일도 없다.
한국이나 미국 모두 요즘 나날이 오르는 최저 임금 때문에 음식점 주인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본식 자판기 주문 시스템이 널리 보급되고 사람들이 이에 익숙해진다면 큰 고민거리 하나를 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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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래의 모습이네요
편하네요 그런데 좀 그러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