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경제의 현주소를 바로 진단하고 그 방향을 점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업률과 인플레, 경제 성장률과 수출 증가율 등 수많은 지표를 감안해야 하는데 때로는 이들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지표 대부분이 남쪽 방향을 가리킨다면 적신호가 켜졌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지금 한국 경제가 꼭 그렇다. 올 봄 한국의 산업 생산과 설비 투자는 5년 내 최대폭 감소를 기록했다. 공장 가동률은 9년 내 최저고 수출도 17개월 연속 증가세를 멈추고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나마 이를 받쳐주는 반도체 경기가 하락할 경우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외국산 자동차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와 함께 한국의 주력 수출업종인 자동차 관련 산업 종사자는 17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 수출이 줄어들 경우 가뜩이나 급속히 악화하고 있는 고용 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환율과 주가다. 올 초 달러당 1050대선까지 내려갔던 환율은 지난 주 1120대까지 치솟았고 역시 올 초 2600에 접근했던 한국 KOSPI 지수는 지난 주 2200대로 떨어졌다. 이처럼 환율이 오르고 주가가 내려가는 것은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아 치우고 한국을 떠났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도 위험을 표시하는 신용 부도 스와프(CDS) 프리미엄도 두 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CDS 프리미엄은 부도로 인한 손실을 보상해주는 파생 상품 수수료인데 이것이 올라간다는 것은 부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한반도는 연이은 남북미 정상 회담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내려가고 있는데 이처럼 부도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것은 무역 전쟁에 대한 걱정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캐나다와 멕시코, 유럽 각국에 대한 대대적 관세 부과에 이어 중국에 대한 관세를 발표한 상태인데 이에 맞서 중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경우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은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될 것이 뻔하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주 청와대 경제 수석과 일자리 수석을 교체한 것은 이런 위기의식의 표현이다. 전임 경제 수석은 최저 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저소득층 수입이 줄자 자영업자들을 뺀 통계로 경제 상황이 좋아졌다는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놓아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이 밖에도 올 봄에 비가 많이 왔다든가 인구 고령화 등 외부 요인을 지표 악화의 원인으로 주장해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이번 인사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상황이 나아지리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J노믹스의 핵심인 ‘소득 주도 성장’ 노선을 수정할 뜻이 없음을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천명했기 때문이다. 문대통령은 급속한 최저 임금 인상으로 저소득층 일자리가 줄고 자영업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최저 임금 상승효과의 90%가 긍정적이라며 이를 밀고 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저소득층 일자리와 수입 감소로 소득 양극화는 15년 만에 최악이고 자영업 매출은 1년 사이 12%나 줄어들었다. 이런데도 문제의 원인을 보지 못한다면 경기가 좋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거기다 국제 무역 환경은 경제 랭킹 1, 2위 국가들이 비난과 협박을 주고받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앞날을 낙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