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들라면 2014년 브라질에서 열린 브라질과 독일의 준결승전이 꼽힐 것이다. 축구 종주국이면서 자신의 안방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브라질은 독일에 7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골 차로 참패했다.
전반 11분 뮐러에게 선제골을 내준 브라질은 아예 수비를 포기한 듯 전반에서만 다섯 골을 내줬고 후반 45분 휘슬이 울리기 직전에야 겨우 한 골을 만회, 7대 1로 게임을 마쳤다. 이런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충격을 받은 한 브라질 소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여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세계 축구사에 길이 남을 기적이 27일 러시아 카잔에서 일어났다. 조별 리그에서 스웨덴과 멕시코에 내리 져 탈락 위기에 놓인 한국이 세계 랭킹 1위인 독일을 2대 0으로 꺾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날 이전까지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은 비난 받을 만 했다. 스웨덴 전에서는 제대로 된 슈팅조차 날리지 못했으며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는 불필요한 핸들링으로 페널티 킥까지 내줬다.
일부 팬들은 과격한 비판을 퍼부어 골키퍼 조현우의 아내와 딸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폐쇄하는가 하면 멕시코에게 페널티 킥을 허용한 장현수에 대해서는 ‘입국을 금지하라’ ‘영구 제명하라’는 등의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왔다.
죽을 힘을 다해 뛰고도 이런 욕을 바가지로 들은 한국 선수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칠천량 전투에서 조선 수군이 사실상 전멸당해 12척의 배만 남은 이순신의 마음 비슷하지 않았을까.
사실상 16강 탈락이 확정되는 것 같던 한국 선수들에게 한줄기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독일이 후반 추가 시간에 한 골을 넣어 스웨덴에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기고 우리가 독일을 2골 차로 이기면 16강에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독일 선수들의 몸값은 8억8,000만 유로로 한국 선수들의 10배에 달한다. FIFA 랭킹 57위인 한국이 1위인 독일을 상대로 비기기도 어려운데 2골 차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1% 정도로 봤다. 일부에서는 한국이 2대 0으로 이길 가능성보다는 7대 0으로 질 가능성이 크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런 비관과 조롱 속에서 태극 전사들은 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 우선 전후반 90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들은 철저한 맨투맨 마크로 독일 선수들에게 결정적 찬스를 거의 허용하지 않았다. 골키퍼 조현우는 신들린 듯 골을 막아냈고 독일의 슛은 번번이 골대를 빗나갔다.
그리고 주어진 후반 추가 시간 6분 동안 한국의 김영권과 손흥민은 연속으로 두 골을 독일 골문에 집어넣는 기적을 연출했다. 경기가 끝난 후 한국 선수들은 그 동안 쌓인 설움을 털어내듯 눈물을 흘렸다.
비록 스웨덴이 멕시코를 3대 0으로 대파하는 바람에 16강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한국은 세계 최강이자 전 대회에 챔피언인 독일에게 80년 만에 처음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고통을 안겨줬다.
이번 경기가 열린 카잔은 러시아 최고의 예술품이자 성화인 ‘카잔의 성모’ 아이콘이 있는 곳이다. 이런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은 ‘카잔의 성모’가 간절한 한국 선수들의 기도를 들어줬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공은 둥글고 축구는 인생처럼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재미있다. 끝까지 빛나는 투혼을 보여준 태극 전사들에게 경의와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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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와 비난은 동전의 양면. 바뀌는게 찰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