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는 보통 아름답고, 부드럽고, 달콤하다. 하지만 언젠가 내 귀와 마음을 잡아끌었던 사랑 노래 하나는 이런 고정관념과 달리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그 곡의 제목은 ‘오르막길.’ 2017년 한해 동안 ‘좋니’라는 곡으로 1990년대의 발라드 감성을 다시 한번 부활시켜 10대 어린 친구들한테서까지 호응을 끌어낸 ‘옛날 사람’ 윤종신이 작사한 곡이다.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사랑 노래가 아니라, 땀 흘리고 거친 숨을 내쉬며 걸어야 할 현실적인 고통을 예고하는 사랑 노래라니 정말 신박(신선하고 참신함을 일컫는 신조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한 신선함을 넘어선 어떤 진정성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사실은 고작 1초의 차이로 갈리는 2017년 연말과 2018년 새해를 지나며 우리는 개인, 가정, 사회 단위로 겪은 사건들을 정리하고, 그로부터 파생된 희망을 가져 보게 된다. 흔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나 “Happy New Year!”로 압축되는 소망의 인사가 온 거리를 채운다.
하지만 나는 모두들 쉽게 내뱉는 “Happy New Year”조차 쉽게 말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싶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2017년에 힘들었던 사람들은 2018년이 되어도 계속 힘들 가능성이 높다. 돈이 없던 사람은 계속 돈이 없을 가능성이 높고, 아픈 사람도 하루아침에 병이 낫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절망과 우울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1초 차이로 갈리는 이 시간의 마디가 가진 이점을 취할 의지도 에너지도 없다.
꽃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던 아이돌 가수가 2017년 말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언장에는 남들처럼 행복하고 싶었던 소망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없었던 자신과 그 성격을 지적했던 의사마저 탓하는 원망이 있었다. 그는 그 동안 힘들었던 자신에게 ‘수고했고 고생했다’라고 말해 달라며 떠났고, 수많은 팬들과 다른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눈물과 안타까움만이 남았다.
그렇게 떠난 아이돌의 가족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우울과 절망감에 젖어 있는 이들에게 새해에 필요한 것은 막연하고 형체가 없는 장밋빛 희망이 아니라,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게 당연한 것이라는 인정이 아닌가 싶다. 모두가 “Happy New Year!”를 외치는 새해지만, ‘Happy’ 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 거라고……. 너 혼자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어렵고 불행한데 버티고 있는 너는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수고하고 있는 거라고…….
2018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지만 하루아침에 희망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여전히 가파른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땀을 흘려야 하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하고의 대화도 힘들어질지 모른다. 만약에 당신이 ‘Unhappy New Year’를 느끼고 있다면, 그건 어쩌면 현실적인 사랑 고백 노래처럼 차라리 진정성 있는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그래도 정말 괜찮다고. 올 한해도 쉽지 않을 거고 우리는 모두 고생할 거고, 수고할 거다. 그래도 속상하지 말라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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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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