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소/ 펜실베니아 주립대 응용언어학 박사과정
“나이가 어린 것과 경험이 부족한 것은 미성숙한 것일 뿐인데, 종종 결점으로 잘못 이해되곤 합니다.” 아서 왕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법사, 멀린이 남긴 말이다.
대학시절 학과 교수님들을 너무 좋아했던 나머지 면담을 너무 자주 신청했었다. 이해가 잘 안 되는 개념이 있어도, 과제를 하다가 알쏭달쏭한 부분이 있어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어도, 조언을 듣고 싶을 때도 면담을 신청하고 연구실 문을 두드렸었다.
교수님을 뵙고 이야기를 하고 나오면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대학시절 내내 그렇게 교수님들을 찾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었다. 교수님들은 학생들한테 관심이 많으니까, 자주 찾아뵈면 오히려 좋아하실 거야, 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입장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때 교수님들은 순수한 호의로 귀한 시간을 내 주셨다는 걸. 만약 당시의 나처럼 1-2주일마다 나를 찾아와서 이야기를 늘어놓는 학생이 있다면, 항상 반겨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논문 작성, 강의, 행정업무, 사적인 일 등으로 24시간이 빈틈없이 꽉 차 있는데, 급하지 않은 일로 매번 찾아오는 학생을 반겨주기는 어려울 거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내 무례를 깨닫게 되었다. 아,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였구나. 바쁜 교수님 입장도 생각해 봤어야 하는구나.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거다. 말실수를 저지르고 나서 바로 깨닫고 사과한 적도 있고, 미숙하던 시절 저질렀던 실수를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실수였다고 알아차리기도 했을 거다.
예전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 되돌아보면 한참 미숙해 보이고, 예전엔 옳다고 생각했던 행동이 나중에 생각해볼 땐 현명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다. 누구나 야심한 밤에 ‘흑역사’가 떠오르는 바람에 이불을 혼자 걷어찬 경험이 있듯이.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건 결점이 아니다. 이것저것 생각해 시도해 보고 실패해 보고 연륜을 쌓아나갈 물리적 시간이 없었던 것뿐이다.
실수도 시행착오 과정에서 자연스레 일어나게 되는 거고, 경험이 쌓여나갈수록 더 노련하게 일할 수 있게 된다. 중학교 도덕책 수준의 예의범절만 알고 있다가, 사회에 나가 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세밀한 배려를 하는 법을 체득하기도 한다. 인간은 변하고 발전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발전가능성을 더 믿어야 한다. 실수를 저지른다 해도 그건 잘못된 게 아니라 다만 아직 경험이 짧을 뿐이다.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혹독하게 모든 약점을 찾아내서 고치려 든다면, 자신을 더 피곤하고 지치게 만들 뿐이다. 눈앞의 실수에 일희일비하느라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면 더 큰 손실이다.
동시에 타인의 발전가능성도 믿어보아야 한다. 타인이 날 무례하게 대해서 기분이 나빠졌다고 해도, 그건 단지 그 사람이 관계를 잘 쌓아 본 경험이 부족해서 저지른 실수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타인과 관계 맺는 경험을 더 하다 보면 그 사람 스스로 깨닫게 될 거다.
타인이 경솔한 행동을 했을 때도, 질책과 비난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음엔 더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발판을 놔 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타인의 실수나 허점은 타인을 까 내리기 위한 먹잇감이 아니다.
멀린의 말처럼, 미성숙과 결점은 서로 다르다. 누구나 어리고 경험이 부족할 땐 미성숙한 행동을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을 쌓아가며 더 성숙해진다. 자신이나 타인의 미성숙한 점을 결점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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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소/ 펜실베니아 주립대 응용언어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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