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한잔의 초대/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서희
13살때 장학생으로 유학…주5일 하루 9시간씩 연습
타고난 재능에 노력 더해 ‘한국 발레의 새 역사’
2015년 서희재단 설립, 한인 후배양성에도 전력
무대에 선 그를 보며 관객은 꿈을 꾼다. 잠시 현실을 잊고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편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American Ballet Theater) 수석무용수 서희를 만나 그가 만든 신화를 들어보았다.
▲하루 9시간 맹연습 중
세계 최정상급 3대 발레단으로 영국 로열발레단, 파리 오페라발레단, 그리고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를 든다. 2012년 ABT 수석무용수가 된 서희는 훤칠한 키에 긴 목과 기다란 팔다리, 토슈즈를 신으면 스타일이 딱 잡히는 길죽한 발조차 발레리나 몸을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그는 오는 10월중순부터 열리는 ABT 가을 정기시즌 공연을 위해 맹연습 중이다.
“100명 정도의 발레단에 얼마 전 20대 초반의 한성우, 안주원 한국인 남자단원 2명이 들어왔다. 1주일에 5일간 오전10시부터 오후7시까지 꼬박 연습을 하고 있다.”는 서희, 맨하탄 ABT연습실 로비에서 연습이 막 끝난 늦은 시간 기자와 만나 피곤할텐데도 눈빛이 맑고 초롱초롱하다.
“기본적으로 하루 9시간 연습하고 공연이 있는 주에는 6일동안 일한다. 발레단은 무용수와 안무, 기타 발레 관련 모든 것을 보호하고 지켜야 하므로 규율이 철저하고 엄하다. 연습이 끝나면 연습실 근처의 집으로 돌아가 30분동안 꼼짝 않고 소파에 누워 있는다.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무용수는 스스로 몸 관리를 잘 해야만 한다.”
10월18일부터 29일까지 맨하탄 링컨센터 데이빗 코크 극장에서 2주동안 열리는 가을 시즌 공연에는 안무가 알렉세이 라트만스키 작품과 제시카 랭, 벤자민 빌피드 안무작 등이 세계초연된다. 봄 시즌은 클래식 대작들을 보여주지만 가을 시즌에는 독창적인 현대적 작품을 보여준다. 서희는 정기시즌후 11월~12월에는 LA에서 ‘호두까기 인형’ 무대에 서고 내년 1월부터 한달간 미국내 투어, 홍콩, 싱가폴 투어에 이어 봄 시즌이 오면 클래식 대작 무대에 선다.
그는 2003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 대상,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에서 수상했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존크랑코 발레학교를 다녔다. 2005년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 정식입단하여 군무를 하다가 2010년 솔리스트, 2012년 26세 나이에 수석무용수가 되며 한국 발레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
ABT 수석무용수는 남녀 20여명 정도인데 돌아가면서 주연을 한다. 서희는 그동안 ‘지젤’,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미녀’, ‘로미오와 줄리엣’, ‘오네긴’ 등 ABT 작품의 주연으로 무대에 섰는데 “그 중 백조의 호수를 출 때 가장 좋다”고 말한다.
▲딸의 결정을 존중한 부모
보통 집안에서 발레리나를 한명 키우려면 황금수저 집안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서희는 순전히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미 주류사회에 우뚝 선 케이스다. 1986년 서종찬, 김영숙씨의 2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난 서희는 오빠와 남동생이 있다. 아버지는 평생 교육계에 몸담았다가 올해 외국어고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셨고 엄마는 가정주부이다. 남들보다 늦게 초등학교 6학년때 취미로 시작한 발레가 선화예중 발레콩쿠르에 입상, 장학금을 받았다.
“친구들은 모두 일반 중학교 가는데 나는 선화예중을 가야하니까 엄마가 마음에 안 들면 안가도 된다고 했다. 친구없이 외톨이로 간 그곳에서 좋은 선생을 만났고 나의 재능을 알아봐 주셨고 기량도 향상되었다.”는 그는 겨우 13살 나이에 미국 워싱턴DC의 키로프발레아카데미(전 유니버설발레아카데미) 3년간 전액장학생으로 유학 왔다.
“올해 미국에 온 지 17년이 되었다. 발레학교 기숙사에서 3년 반을 보냈는데 너무 어려서 외로운 것을 몰랐다. 그냥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좋았고 열심히 연습하니 결과가 좋았다. 어려서는 몰랐는데 수년 전부터는 하나 뿐인 딸인데 엄마에게 소홀했다는 생각이 든다. ” 부모님은 언제나 딸의 선택을 존중했다.
“한국은 늘 일 때문에 갔었다. 어려서부터 떨어져 사는 딸에게 엄마, 아빠는 무슨 일이 있으면 조심스레 올 수 있니 물으셨고 못 가도 한 번도 서운해 하지 않으셨다. 이제 좀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그다. 뭐든 가리는 것이 없이 잘 먹는다는 그는 어려서는 김치를 못 먹어도 상관없었는데 수년 전부터 한국 오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한국음식을 더 잘 먹고 있다.
“할머니가 만든 고추장, 간장, 된장을 뉴욕에 갖고 와서 요리에 넣어먹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아버지는 뉴욕 공연을 한 번도 못보셨지만 엄마는 13년간 시즌 때마다 뉴욕에 와 뒷바라지 하셨다. ” 드라마틱한 표현 능력, 남다른 성실함, 빈틈없는 예의범절, 한마디로 똑 소리 나는 그도 힘들 때가 많았다.
▲후배에게 기회 주고싶어
“발레가 잘 안될 때 힘이 들었다. 한국의 엄마와 전화를 하면 내 고민이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 춤을 추다보니 부상도 당하고 치료를 해야 했고 남들이 하는 일 다 겪었다.”춤을 추던 중 남자무용수가 실수로 떨어뜨리면서 발이 접질러지고 발목 인대가 길게 세로로 찢어졌다. 부상 정도는 심해도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되어 물리치료로 수개월간 재활하며 다시 몸을 만들어가야 했다.
“1년 내내 발레만 하는 것이 아니다. 휴식기간이 되면 그 시간이 외로웠다. 뭔가 일을 찾아야 했다. 내가 받은 혜택을 후배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이번 여름 한 달동안 한국에서 무료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다. 한달동안 20곳, 300명을 가르쳤다. ”또 서희는 2015년 11월 서희재단을 설립, 2016년 9월 한국에서 ‘2017 YAGP(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의 한국예선인 코리아 발레 콩쿠르를 열었다.
2003년 한국인 처음으로 세계최고 발레대회인 YAGP 전체 대상을 받았던 서희는 이 대회의 한국유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작년 처음으로 YAGP 한국예선을 열면서 항공권과 숙박비 등의 한국학생들 수고를 덜어줬고 올 4월 뉴욕본선에서 한국 선수 3명이 입상했다. 올 9월말에 열린 제2회 YAGP 한국 예선에는 300명이 응모했다.
“저한테는 발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발레가 우선이고 휴식시간에 이 일을 하는 것이다. 서희재단 일은 굉장히 멋지다. 인복이 많아서 변호사, 세무사, CF 감독, 홍보담당 등 전문인들이 재능기부하고 있다. 신기한 것이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몸도 따라온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잘 태어나게 해주셨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일이 잘 되고 있다. 사회에 봉사할 수 있어 감사하다.”
▲뉴욕한인 찾아줘 감사
“링컨센터 가까이 살다가 연습실 가까운 다운타운으로 이사 와 보니 이곳에 사는 것이 재미있다. 기부문화가 정착된 미국에서 기금모금행사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또래 친구를 만났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발레단 동료들과도 잘 지낸다. ”그는 일년의 반 정도는 뉴욕에, 나머지는 미국내와 세계각지로 해외공연을 하다 보니 친구가 없을 거란 우려를 불식시킨다.
“뉴욕무대에 처음 설 때는 아는 한인들이 없었다. 점점 공연이 끝나고 백스테이지로 저를 보러 오는 분들이 많아진다. 한국말로 격려해주는 한인들이 너무 반갑고 고맙다.”는 그다. “공연 전날에 잠을 잘 못 잔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놓았다 해도 떨리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무대의 막이 활짝 열리고 공연이 시작되면 안정적인 기분이 되면서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는 서희, 그는 몸과 마음이 타고난, 우리들의 영원한 발레리나로 자리매김했다.
<
민병임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