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길거리에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는 여중생들은 이제 사라진 거 아닌가 했었다. 한국에서 로펌 다니는 친구가 나의 모교인 여자 중학교에서 변호사 직업교육 강의 초청을 받아 가게 되었다고 연락을 해왔다. 그 동안 남자 중학교에만 갔었는데 이번에는 여중이라 기대가 크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큰 기대는 하지마라. 나 중학교 시절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까불까불 뺀질뺀질 말 안 들을걸. 요즘 애들은 더 무서워. 학교 폭력 수위를 보라고 ….”
남자인 그 친구의 봉사활동과 요즘 시끄러웠던 부산, 강릉 사실 전국의 여중생 폭력 사건들은 그 시절의 나를 불러냈다. 나는 지독히도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여중생이었다. “그 집 딸래미는 도통 웃는 것을 못 봤다”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엄마에게 한 증언(?)과 가끔 우리 집에 놀러오던 남동생 친구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나는 어떤 진지한 어두운 기운을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유약한 감정이 지배하는 “사랑” 보다는 머리나 이성으로 하는 “인정”을 받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사랑을 못 받고 자란 것도 아니고 가정이 별 달랐던 것도 아닌데 나는 그 때 왜 그랬을까?
돌이켜 보면 성장에 있어서 불균형이 일어나는 시기였던 것 같다. 이성과 합리성이 먼저 발달하고 사회성이나 감성 혹은 그 중요성은 나중에 고등학교에 가서야 깨달았다.
어른들이 눈을 감고 싶을 만큼 참혹하게 다른 학생을 때린 여중생 이야기가 요즘 너무 흔해지고 있다. 내 조카가 그렇게 맞거나 때렸다고 생각하면 그 참담함은 말로 형용이 안 된다. 사실 내가 어리던 그 시절에도 남자친구 넘본다고 후배 여자아이를 무릎 꿇려 놓고 심하게 때려 결국 학교도 그만 두고 구치소로 갔던 여고생은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 친구기도 했던 그 아이는 가정불화를 핑계로 먼 길 돌았지만 그래도 결국 대학도 갔고 취직도 했다. 지금쯤은 엄마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요즘의 뉴스를 접하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요즘 10대는 우리 때보다 더 심하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직업교육 강의를 다녀온 변호사 친구가 친절하게도 보고를 해준다. “후배들 아주 착하네. 역시 여중생들이 착하고 호응도 좋아.” 라고.
그렇구나. 여전히 구르는 낙엽에 웃는 여중생도 있고, 온몸으로 어둠을 뿜어내는 여중생도 있고, 겁 없이 사람 때리는 여중생도 있고, 이걸 한꺼번에 다 하는 애들도 있겠구나. 아주 어리지도 성숙하지도 않았지만 아직은 발달 혹은 성숙의 불균형으로 이런 저런 모습을 다 가진 여중생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아닐까?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중생들은 비슷하다면, 문제도 열쇠도 어른에게 있는 것 같다. 당시에는 “사랑”의 가치도 몰랐던 내가 계속해서 받았던 사랑으로 결국 이제는 사랑 예찬론자가 되었듯이, 현재의 여중생들도 어른들의 사랑밖에는 답이 없지 않을까?
물론 사랑을 현명하게 표현하고 실천하는 방법은 어른이 되어도 계속 배우는 중이니 어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분명 때린 여중생도 맞은 여중생도(그리고 남학생도 고등학생도) 사랑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 아닌 가 싶다.
그 시절 그 여중생, 내가 안타깝듯 (그 좋은 시절 좀 웃지…쯧쯧) 지금의 여중생들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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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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