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뜨거움이 나한테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달 27일 오후 홍콩의 명문국립대인 홍콩대 학생회관 앞에서 만난 티모시 청(23)씨에게 2014년 우산혁명에 대해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1학년 때 행정장관 직선제 등 민주화를 요구하며 두 달 넘게 이어진 우산혁명 기간 내내 거의 매일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산혁명이 폭력적으로 진압된 뒤 그는 가급적 뉴스와 담을 쌓았다. 티모시 청은 “젊은이들을 좌절시킨 사람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새 행정장관이 되는 곳이 바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홍콩이란 사실을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도 “이제 시위로 뭔가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도서관으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주권 반환 20주년을 코앞에 둔 2017년 6월의 홍콩에선 2014년 우산혁명과 2016년 어묵혁명의 뜨거웠던 민주화 열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국 당국의 직간접적인 통제력은 갈수록 강화된 반면 시민들은 먹고 살기 팍팍해진 일상의 굴레에 매몰된 듯했다. 몽콕에서 5㎡ 남짓한 과일주스 가게를 운영하는 뤼스런(43)씨는 “임대료가 작년에 30%나 올라 죽을 지경”이라며 “일은 더 열심히 하는데 살기는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우산혁명 당시 경찰에 연행된 적이 있다는 그는 “지금 같으면 차라리 시위대에게 주스를 팔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 홍콩은 근래 들어 빈부 격차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적인 국내총생산(GDP)과 1인당 GDP는 1997년 주권 반환 당시에 비해 각각 82.7%, 60.4%가 늘었지만, 소득분배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역대 최고치인 0.539까지 치솟았다. 0.5가 넘어가면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게다가 카오룽반도의 중소형 주택 가격은 3.3㎡당 같은 시기에 112.4%나 급등했다.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직접 나서서 “지난 20년간 홍콩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고 자평했지만, 실제 대다수 홍콩시민의 삶의 질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 당국은 홍콩 내 민주화 요구의 싹을 아예 잘라버릴 기세다.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최근 “(홍콩에 대한) 전면관리권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 게 단적인 예다. 홍콩기본법은 외교ㆍ국방 이외 분야에서 홍콩에 고도의 자치를 허용하지만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 발생하면 개입할 수 있다는 조항이 명기돼 있다. 지금껏 사문화된 것으로 여겨졌던 이 조항을 들고나온 것이다. 중국 지도부 내에선 일종의 행정장관 파면권인 지령권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역시 홍콩기본법에 명기돼 있지만 지금까지는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다. 합법의 외피를 쓰고 ‘순응하는 홍콩’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바람대로 상황이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홍콩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에서 반중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최근 공표된 홍콩대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 청년 중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기는 비율은 3.1%에 불과했다. 홍콩에서 나고 자란 세대에서 홍콩인으로서의 본능적인 주체의식이 형성돼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들의 정서가 흐트러짐 없이 스스로의 정치체제를 선택하겠다는 자결 요구로까지 이어질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통킴카이 홍콩중문대 객원교수는 “젊은 세대의 공통 경험이 필요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무엇일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답답해했다.
<홍콩=양정대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달 30일 스강기지를 방문해 부대를 사열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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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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