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학교를 다닌 마지막 세대이다. 입학할 때만 해도 OO국민학교였는데 졸업할 때가 되니 OO초등학교로 바뀌었다.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90년대 한국은 북한과의 이데올로기 대립 양상이 급격한 변화를 겪은 격동의 시대였던 것 같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국내외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리 없고 그저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어렴풋이 세상이 변하고 있고 특히 북한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일 때, 그러니까 6.25 전쟁 50주년이 채 안 되었을 때, 매년 6월에는 반공 포스터 그리기와 반공 글짓기 대회가 열렸다. 그림 그리고 글 쓰는데 재주가 있던 나는 곧잘 상을 탔고 내 그림이나 글은 다른 수상작들과 함께 학교 로비에 전시 되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포스터들에는 ‘공산당은 싫어요’ 같은 글귀와 함께 굶주린 북한 주민들과 탱크와 총으로 무장한 북한 군인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고학년이 되었을 때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더니 대회 이름도 평화통일 포스터 그리기와 평화통일 글짓기 대회로 바뀌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출품작들도 바뀌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같은 글귀에 하얀 비둘기가 초록 이파리를 물고 하늘색 한반도 위를 날아가는 그림들이 주를 이루었다.
당시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대북한 시각의 변화 양상은 실로 놀랍다. 그러나 사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라고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부시 전 대통령의 ‘악의 축’ 발표 때처럼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과 사드 발언으로 한반도 긴장국면이 심화되고 있다. 휴전선을 긋고 분단이 된 후 6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답답한 상황은 여전하다.
한번은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던 중국 창춘 출신의 친구가 북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북한 사람과 교류하는 건 불법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는 북한 사람들을 자주 봐서 또래 친구들도 있었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대만 친구들과 있는데 북핵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한 친구가 나에게 북한의 동태에 대해 들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내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다른 친구가 아마 한국 언론보다 대만 언론이 더 잘 알지도 모른다고 응수했다.
한국인 혹은 한국계 이민자이기에 사람들은 북한 이슈를 꺼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곤 한다. 좌파 우파를 떠나 태평양 건너 모국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안타까움이다. 분단의 상처를 딛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자랑스러운 작은 나라가 냉전의 연장선상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다가 행여나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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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시스코 선임 프로덕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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