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누가 따로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두세 살 어린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능청스럽게 말을 돌리기 시작하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들은 보다 능숙하게 속을 숨기기도 한다.
속을 숨기는 것이 항상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도가 과하면 내숭이나 가식이 되겠지만, 타인들과 원만하게 지내기 위한 예의이자 요령이 될 수 있다.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의도치 않게 주위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속을 온전히 내놓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지레 짐작하게 된다. 짐작을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불완전한 정보의 조각들을 짜 맞추고 맥락을 읽어 상대방이 취할 다음 한 수를 읽어내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함으로써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 것이다 하는 예측이다.
가끔 짐작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질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소위 센스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늘 왠지 이게 먹고 싶었는데” 혹은 “오늘 피곤해서 누가 이거 대신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라고 말하는 상대방에게 그가 마침 원하던 그 무언가를 해주면서 내 짐작이 맞아 떨어졌음에 왠지 뿌듯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가끔 짐작이 기가 막히게 벗어 날 때도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 특히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화를 하다 보면 아무리 속에 있는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하더라도 그 뜻이 온전히 전해지는데 한계가 있다. 화자와 청자가 각기 속한 상황도 다르고 서로의 상황에 대한 이해도 낮기 때문이다.
얼마 전 비행기에서 생긴 일이다. 장거리 출장의 여파로 고단했던 나는 다른 승객들처럼 좌석을 최대한 젖히고 졸고 있었다. 얼마 후 뒤에 앉은 백인 할머니가 공간이 좁다며 내 좌석을 반 정도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 할머니에게 공간이 좁으면 좌석을 뒤로 젖혀보라고 제의했고, 그 할머니는 뒤에 앉은 사람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 않아서 젖히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뒤에 앉은 사람의 불편은 중요하고 앞에 앉은 나의 불편은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통 때는 흔쾌히 들어줬을 부탁을 그날따라 억울한 느낌이 들어 거절했다. 내가 당연히 자신의 부탁에 응할 것이라고 짐작했던 백인 할머니는 단단히 화가 나 보였다.
찝찝한 마음을 안고 30여분을 있다가 화장실을 가려 뒤로 걸어가던 나는 “아…” 하는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그 백인 할머니의 뒤에는 서너 달 정도 된 아기를 안은 아시아계 엄마가 앉아 있었다. 그래서 그 백인 할머니가 의자를 뒤로 젖히지 않았던 것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나는 슬그머니 좌석을 올려 앉았다. 마음속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백인 할머니는 왜 나에게 상황을 좀 더 설명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이 할머니에게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 했을까?
다시 한번 어떤 사람에게 말이든 행동이든 무언가를 기대할 때 어설프게 짐작하지 말고 투명하게 충분하게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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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시스코 선임 프로덕트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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