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사는 이야기/앤드류 박 교통사고 전문변호사
열살 때 이민, 백인사회에서 우등생으로 자라
개인 사무실 오픈 14년만에 직원 14명 법률사무소로 성장
노인단체 후원·장학재단 설립 등 한인사회 애정도 남달라
그는 영어와 한국어 모두 능통한 1.5세 한인변호사다. 누구나 시도할 수는 있어도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는 교통사고 전문이다. 20여년 교통사고 분야에만 집중하고 있다. 풍부한 경험의 전문성이 장점이자 자산이다. 고객은 가족처럼 여긴다. 믿고 맡기면 고객이 감동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작은 케이스도 사소하게 다루지 않는다. 법정에선 강력함을 발휘한다.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라는 타이들을 달게 된 이유다. 한인사회의 애정도 남다르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다음 세대의 인재양성에도 앞장선다. 각종 한인단체에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한인사회서 받은 사랑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환원하고 있다. 그는 앤드류 박(47)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다.
●백인 친구들과의 학창시절
그는 1969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다. 2남3녀의 장남이다.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 서울 화곡동에 살았다. 사교성이 좋아 친구들이 많았다. 동네 까치산이 놀이터였고, 저수지에서 올챙이도 잡았다. 개구쟁이로 자랐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모범생이자 우등생이었다. 리더십으로 반장도 그의 몫이었다. 열 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 주재원이던 아버지가 가족을 초청했기 때문이다.
이민생활은 뉴저지 데마레스트에서 시작했다. 학교는 가톨릭 스쿨을 다녔다. 한인학생은 혼자였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지만 유치원 영어부터 배웠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4년 만에 극복했다. 8학년 때부터 미국아이들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백인친구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사춘기는 느끼지도 못하고 보냈다. 맞벌이 하시던 부모님 대신에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는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백인친구들과 어울리며 무난하게 보냈다.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전문적인 직업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삶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인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보석과 시계를 생산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커스텀서비스에서 일하며 사회경험도 쌓고 돈도 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대에 지원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아버지 지인이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패소한 것이다. 당시 아버지는 그에게 ‘네가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며 변호사가 돼서 억울한 사람을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을 넌지시 비춘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바람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시라큐스대학교 법대를 지원하게 된 셈이다.
●교통사고 전문변호사
그는 1996년 법대를 졸업 후고 한국법률회사에서 6개월 정도 일했다. 한국 변호사와의 교류, 한국법률회사에서의 경험, 한국어 향상, 한국생활 경험 등을 할 수 있었다. 로스쿨을 다니던 시절 패선스쿨 유학생이던 아내를 만나 3년의 연애를 하고 1996년 한국에서 결혼한 것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결혼 후 6개월 정도 처가식구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한국 생활 역시 매우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는 1997년 뉴욕으로 돌아와서 사고 상해전문 로펌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무려 6년의 경험을 통해 기초가 튼튼한 변호사로서 성장했다. 확실한 법적지식을 터득하고 전문적인 노하우를 축적함으로써 완벽한 변호사가 되고자 노력하던 기간이었다.
개인법률사무소를 개업한 것은 2003년. 3개월 후 파트타임 직원을 고용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21년 차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다. 개인사무실을 오픈한지도 14년이 지났다. 현재 뉴욕과 뉴저지 사무실에는 10명의 변호사가 일하고 있다, 직원들도 14명이다. 한인변호사 9명은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해 법정에서 통역관이 필요 없을 정도다. 유대인 변호사 1명도 고용하고 있다. 유대인 변호사를 선호하는 한인 고객을 위한 배려다. 타민족 고객의 편리를 위해 백인, 중국인, 남미 직원 등도 상주시키고 있다.
그는 법정에서 고객을 위해 일하는 것이 교통사고 전문변호사의 매력으로 꼽는다. 초년생 시절엔 법정서 통역관으로 오해했던 법정 관계자들이 이제는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로 인정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그는 아무리 작은 케이스도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다. 승소를 위한 과정이 스트레스지만 승소했을 때는 그 스트레스가 보람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공부하는 변호사로 최선을 다하는 이유다.
변호사의 1년 인생은 일반인의 7년 인생이라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변호사의 단점으로 꼽는 그는 장점은 경제적 힘도 주고 노력한 만큼 대가가 있으며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처음과 마무리까지 고객을 직접 대한다. 대형로펌과 개인변호사의 양쪽장점을 접목시키는 방식으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고객을 대할 때 교통사고 분야에 대한 이해를 시키는 교육에 중점을 둔다. 사고를 당하면 실력 있는 변호사를 통해 전문적인 법률적인 지식과 정보에 관한 상담을 거쳐 대응하는 것이 현명하다며 무료상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베푸는 깊이 있는 법률서비스를 받아본 사람들은 그 감동을 쉽게 잊지 못한다. 한번 고객이 영원한 고객이며 그를 추천하는 입소문으로 늘 사무실이 붐비는 이유다. 2015년 로저널이 최우수변호사로 선정한 것도 그런 자세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20여년이 넘는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법률서비스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한인사회에서 대표적인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라는 타이틀이 자연스럽게 붙게 된 셈이다.
●끝없는 선행
그는 한인사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웃어른들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노인 단체에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힘든 이민생활 속에서도 자신을 바르게 키워준 부모세대에 대한 보답의 뜻이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한미충효회 효행상을 수상할 정도다.
차세대를 위해 자신의 호를 딴 설창 장학재단도 설립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3,000달러의 장학금을 8명의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차세대 한인학생들에게 한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장학생들이 나중에 성공해 또 다른 차세대들에게 장학금은 나눠줄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뉴욕한인회와 미동부 추석맞이대잔치 행사를 위해 거금 기부도 서슴지 않고 있다. 각종 한인단체들에게 크고 작은 후원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어르신을 공경하고 지역에 봉사하며 한인사회를 위해 다양한 선행을 한 공로로 대한민국 환경 봉사대상을 수상했다. 한인사회와 정치인들에게 다양한 상을 받은 경험이 있는 그지만 한국에서 직접 상을 받는 것이 처음이라 더욱 뜻 깊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수상소감을 통해 한국에서 한인들을 인정하고 있으니 더욱 잘살아야겠다며 한인들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한 것 같아 큰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 친척 등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을 매우 기쁘게 여기고 있다. 그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한인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베푸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자
그는 은퇴를 하면 교육자의 삶을 살고자 한다. 후배 양성을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과 재정적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교수생활이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 것 등도 계획하고 있다.
한인밀집지역인 플러싱에 대형 광고판을 세운 그는 설치이유로 ‘한인들의 자존심’을 꼽는다. 맨하탄 타임스스퀘어에 한국 대기업 광고가 한인들에게 자랑스러운 마음을 갖게 하듯이 불황에 힘들어 하는 한인들의 자손심을 세워주기 위해 대형광고판을 설치한 것이다. 한인 1.5세 변호사가 대기업이나 설치할 수 있는 대형광고판을 설치한 것은 한인들의 자부심 고취뿐 아니라 타커뮤니티에 한인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가족 사랑이다. 1993년 아내를 처음 만났다. 패션스쿨을 다니던 유학생을 소개 받은 것이다. 첫 데이트를 맥도널드에서 하면서 알뜰하고 가정적이라 현모양처감이라 생각했다. 막내라 귀염성과 애교도 맘에 들었다. 내 인생의 최고의 여자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 평생의 반려자로 삼았다. 현재는 아내, 외동아들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주말이면 가족들과 외식하고 여행을 즐기며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려 한다.
서로의 행복과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여기는 그는 고마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사는 것을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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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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