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게 된지 어느 덧 10년이 다 되어 여권을 새로 발급받을 시기가 되었다. 한번 발급 받으면 세계 어느 곳이든지 향후 10년은 들고 다녀야 하므로 이왕에 찍을 여권 사진이라면 스튜디오 사진촬영이 흔한 한국에 온 김에 예쁘게 한장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어차피 예쁘게 머리하고 화장하고 찍을 것이라면, 학교 홈페이지에 싣는 프로필 사진도 새로 한장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프로필 사진 좀 찍는다는 곳을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했다.
다른 일정 탓에 시공간 상의 제한을 고려하고 나니 가로수 길의 한 스튜디오에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손재주가 없어서 요즘 말로 곰손인 관계로 아침부터 서둘러 머리손질과 화장을 전문가에게 받았다. 그리고는 스튜디오에 들어서 카메라 앞에서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니 사진사는 꽤 짧은 시간에 70장 이상의 셔터를 눌렀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오락 방송에서 이상형 콘테스트를 하듯 몇 번에 걸쳐 고르고 골라 가장 잘 나온 사진을 한 장 고른 후 사진사는 포토샵으로 보정작업에 들어갔다. 나는 원래 피부가 어두운 편인데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좀 피곤해 보여서 피부 톤 보정을 하려나 생각했다. 하지만 사진사의 장인정신은 남달랐다.
‘장인’하면 국어 교과서에 등장했던 방망이 깎는 노인이 생각난다. 손님이 이제 다 되었으니 대충 마무리 해달라고 해도 다듬이 방망이를 깎는 노인은 스스로 흡족할 때까지 방망이를 내놓지 않았다.
흡사 그 노인처럼, 사진사는 내가 사는 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사진이 중요하니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이나 채근했지만, 본인이 흡족할 때까지 사진을 내놓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있던 내 팔뚝은 가늘어졌고, 어깨도 더 반듯해졌으며, 잔머리도 정리되어 없어지고, 눈 밑 다크써클도 사라졌다. 목에 있던 주름도 좀 사라진 것 같고, 입매도 살짝 고쳐진 것 같다.
그가 장인정신을 발휘한 후, 거기에는 한국 광고판에 자주 등장하는 예쁘고 실력 좋아 보이는 영어 강사 프로필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소심한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여기서는 이렇게 하나 보다 하고, 나 아닌 낯선 여자의 얼굴 사진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원본은 제공하지 않으며 원본을 원하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와는 너무 달라 특히 미국에서는 프로필 사진으로 쓸 수 없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니 지인들은 사진 속의 여자보다 내가 더 낫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나 역시 그냥 “내 한 몸 바쳐 지인들을 즐겁게” 한 사연에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조금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인정하고 만족하고 받아들여주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은 내게 여전히 남아있다. 그 정도는 현실적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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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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