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하철 승강장에 써있다는 다산 정약용의 한시 ‘혼자 웃는 이유 (獨笑)’를 우연히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어찌 살아야 할까, 어떤 결심을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지는 정초에 마음의 부담을 가뿐하게 해준 시는 이렇다.
“곡식이 넉넉한 집엔 먹을 사람이 없는데/ 자식 많은 집에서는 주릴까를 걱정 하네/ 영달한 사람은 어리석기만 한데/ 재주 있는 사람은 기회조차 얻지 못 하네/ 복을 다 갖춘 집 드물고/ 지극한 도는 늘 펴지지 못하네/ 아비가 아낀다 해도 자식이 늘 탕진하고/ 처가 지혜로운가 싶으면 남편이 꼭 어리석네/ 달이 차도 구름이 가리기 일쑤고/ 꽃이 피어도 바람이 떨구네/ 세상만사 이렇지 않은 게 없어/ 혼자 웃는 그 뜻을 아는 이 없네.”세상 일이 계획한 대로, 꿈꾸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벌써 알고 있어 어떤 이들은 무계획이 계획이라고도 하지만, 다시 오지 않을 새로운 365일을 살기 전 새삼 마음이 벅찬 것은 사실이다. 다만 세월을 지나온 경험에 따라 한해를 준비하면서도, 다산의 시처럼 마음 한 켠에 빈구석하나 마련해 놓으면 좋겠다 싶다.
그렇다고 뭐든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거나 너무 기대를 하지 말라거나가 아니라, 좀 더 유연하고 편안하게 인생을 들여다보라는 말이리라.
새해 들어 첫번째로 손에 든 책은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유시민 작가가 한다는 사실에 일단 마음이 놓이고, 이런 생각은 어쩌면 해마다 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느낀다. 스무살 무렵 통제에서 벗어나 대학생활을 할 때의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지금의 것은 무척이나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발을 들여놓고 사회인이 되는 것이 목표였던 때와 남은 몇 십년을 의미있게 건강하게 사는 것이 목표가 된 지금, 유시민의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는 말이 올 한해도 꾸준히 내면의 힘을 기르는 해가 되어야 할 것임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내면의 힘이 충만하게 되어, 혼자서 슬며시 웃게 되는 것이다. 남들은 괴롭고 힘들어 할 수 있는 일 앞에서도 혼자 웃는 사람이 소위 내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희망사항이지만, 앞으로 내가 쓰게 될 혼자 웃는 이유의 내용은 이렇지 않을까.
“이웃이 새 잔디를 깔았으나 곧 잡초가 올라 오네/ 친구의 아이가 수석을 했지만 내 아이가 더 스윗하고/ 지인이 더 큰집으로 이사를 갔지만 우리집은 내 몸에 맞춘 듯 편하네/ 누구의 연봉이 올랐다지만 우리 집엔 아픈 사람 하나 없고/ 햇빛 지루한 캘리포니아에도 때로 비가 오고 눈 있는 산도 지척이네.”또한 한국에서 매일 쏟아지는 답답한 뉴스들을 보면서 이렇게 혼자 웃는 이유를 쓰게 되길 바라본다.
“주사를 아무리 맞아도 세월은 못 속이고/ 권력에 취한 뒤끝은 술 깬 뒤보다 처참하네 / 캄캄한 밤이 지나면 꼭 해는 떠오르고/ 꽁꽁 언 겨울 햇빛아래 눈 녹은 자리에 새싹이 돋아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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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민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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