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저녁이었다. 일광절약 기간이 끝나 꽤 어두워진 시간에 워싱턴 D.C.의 한 일본라면 식당에 갔다. 유명한 식당인 만큼 이름값을 하느라 45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식당에 서 있는 대신 길에 주차해 둔 차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주차된 차 앞에는 작은 주류점이 있었다. 가게 문과 진열장은 온통 철창으로 덮여 있었다. 딱 봐도 험한 동네였다.
손님들이 문을 열고 드나들 때 언뜻 보니 그 내부 역시 투명하지만 두꺼운 재질로 온통 가려져 있었다. 즉, 가게 점원과 손님 사이에 직접적 접촉이 없게 되어있는 구조였다. 누군가 총을 들이밀어도 놀랍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 45분을 앉아 있으며, 처음으로 의도치 않게 그런 거리를 지켜보게 되었다.
우선 생각 보다는 많은 손님들이 가게를 드나들며 검은 비닐로 싼 맥주 캔으로 추정되는 물건들을 들고 나왔다. 손님들의 행색은 홈리스와 비슷했다. 어쩌면 일부는 정말 홈리스였는지도 모르겠다. 넉넉지않은 돈으로 맥주 두어 캔 산 것이 분명했다.
또 다른 사람은 주차 스테이션을 일일이 뒤지고 다니고 있었다. 혹시나 누가 두고 갔을지 모를 잔돈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길 건너편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근처 자전거 보호대에는 자전거 몸체 부문만 자물쇠에 묶여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자전거 바퀴와 의자 부분은 다 떼어 가고 없었다.
문득 내가 이런(?) 거리에 올 일이 별로 없었음을, 온다 해도 이렇게 오래 지켜본 경험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참으로 슬퍼졌다. 남들이 흘리고 간 잔돈을 찾기 위해 바닥과 주차 스테이션을 뒤지고 다니는 사람에게 어떻게 열심히 일하면 생활이 나아질 것라고 가르치고 보다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아이패드를 도둑맞은 친구가 위치 추적을 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 지역이 적어도 경찰 7개 팀은 모여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해서 공권력이 개입하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런 지역에서 태어난 어린 아이들은 대체 어떤 사회를 배우고, 살아 남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쳐야 하는 지 생각하니 참으로 먹먹했던 기억이 있다.
지구상 최강국 미국의 수도에도 이렇게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빈민가가 있고, 무작정 도와 줄 수도 그렇다고 안 도와 줄 수도 없는, 매일 의식하고 살 수도 그렇다고 모르는 채 살 수도 없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속한 환경에서 만나고, 대화하고, 교류하는 사람들은 극히 작은 한 부류였으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 보호된 ‘따듯한 이불’ 안에서 살아 왔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감사하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 들었다.
선거에 앞서 경제학자 폴 크루만은 뉴욕 타임스에 우리가 미국을 잘 몰랐다며 개탄한 칼럼을 썼다. 예상치 않게 빈민가에서 보낸 45분도, 이번 선거 결과도 내게는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미국의 또 다른 거대한 세계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위험한 ‘이불 밖’을 전혀 모르면서도 그토록 아는 척 굴었던 내가 참으로 슬프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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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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