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행취재/사랑의 도시락을 배달하는 사람들
▶ KCS 가정급식 프로그램...노인 150명 매일 배달

급식 배달봉사자 배상천(오른쪽)씨가 린다 이 할머니에게 급식 배달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반갑게 맞아주는 어르신들 보면 힘든줄 몰라
수년째 장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한인들의 삶도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일자리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뛰다보니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관심과 배려, 나눔이 없으면 삶 자체가 어려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식사도 스스로 마련하지 못해 배달되는 도시락에 기대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이 그러하다. 이들에게 사랑의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는 뉴욕한인봉사센터(KCS) 가정급식 배달 프로그램 자원봉사자들을 동행했다.
■도시락에 사랑을 담는다

KCS 코로나 경로회관 주방에서 봉사자들이 배달할 가정급식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1일 오전 8시. 이날도 KCS 코로나 경로회관 주방에는 자원 봉사자들은 어김없이 150인분의 점심 도시락 식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비록 선선한 가을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자들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권인숙씨는 “현관문을 열며 반가운 얼굴로 점심 도시락을 받아들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들을 생각하면 힘든 줄 모른다”며 “혼자 외롭게 살며 매일 점심 도시락과 배달봉사원을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을 생각할 때마다 더 맛있는 요리를 더욱 정성스럽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며 웃음을 보였다.
오전 9시30분. 이제 주방에서 갓 요리된 음식을 일회용 그릇에 담아 도시락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뉴욕시 영양 규정과 영양사의 감독하에 정성껏 만들어진 도시락들은 배달 봉사원의 차량에 척척 옮겨진다.
■할아버지 봉사자의 종횡무진 배달

배식 차량 운전 봉사를 하고 있는 레이몬드 이 코디네이터.
완성된 도시락들은 2인 1조 배달팀 차량 3~4대에 나뉘어 실려 롱아일랜드시티, 플러싱, 베이사이드, 그레잇넥, 포레스트힐, 레고팍, 코로나 등 퀸즈 전역에 거동이 불편하거나 혼자 살고 있는 130~150명의 노인들에게 배달된다.
기자는 16년째 배달 봉사를 하고 있는 레이몬드 이(79) 코디네이터, 5년 경력의 배상천씨와 한조가 돼 급식차량을 타고 배달에 나섰다.
운전대를 잡은 이 코디네이터는 “급식 배달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은퇴를 한 후 소일거리를 찾던 중 KCS 경로회관에 붙은 채용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해 지금까지 배식차량 운전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여든이 된다는 이 코디네이터는 “나도 이제 배식을 받아야할 입장이지만, 아직도 운전대를 잡고 종횡무진 휘저으며 사랑의 점심을 배달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운전대를 놓지 않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 코디네이터와 배씨는 봉사원들 중에서도 환상의 배달조로 통한다. 오래된 경륜을 통해 골목집이면 골목집, 고층 아파트면 아파트, 매일 50~60곳의 집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시간에 배달을 끝낸다. 도시락으로 아침과 점심 모두를 해결하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늦지 않게 배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배상천씨의 설명이다.
■급식 배달원을 향한 기다림
‘딩동 딩동 딩동…’ 초인종을 누르자 린다 이(82) 할머니가 “아이고, 더운데 고생이 많아요.”라며 배상천씨를 반갑게 맞는다.
이 할머니는 “매일 매일 점심도 기다려지지만 점심 보다 잠깐이라도 배씨 얼굴을 보고 인사라도 하는 게 낙”이라면서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배씨를 보며 “잘 먹을게요”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배상천씨는 “할머니가 지난 10년 동안 매월 10달러씩 KCS에 도네이션을 하고 있다”며 “어렵고 힘들게 혼자 사는 상황 속에서도 늘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라 소문이 자자하다”고 말했다.
급식 배달 중반 가량이 진행 될 쯤 정진성, 정명희씨 부부가 살고 있는 퀸즈 플러싱의 한 아파트에 다다랐다. 정명희씨는 지난 2013년 11월 아파트 계단에서 넘어지는 불의의 사고로 뇌출혈 증상으로 인해 거동과 식사가 불편한 상태다. 이들 부부를 위해 배씨는 매일 점심을 배달하며 말벗이 되어준다.
정명희씨의 남편 정진성씨는 “아내를 간호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배씨가 따뜻한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올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며 “요리를 하는 시간을 아껴 아내를 더 보살 필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정씨 부부와 한동안 건강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눈 배씨는 “내일 뵐게요"라며 인사를 건네고 나오면서도 쉽게 아파트 현관문을 닫지 못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배씨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처럼 현관문 뒤에 보이는 식탁 위에 점심 도시락에서도 뜨거운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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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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