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지난 몇 주 사이에 수백만, 또는 천만에 가까운 관객이 보았다는 각 영화의 유명세와 흥행 기록들은 뉴스나 SNS를 통해 익히 들었지만, 한국에서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서너 편이 한꺼번에 미국의 극장에 걸리는 것은 참 드문 경우였다. 반갑고 궁금한 마음에 주말의 자투리 시간을 내어 화제의 중심에 있던 영화 두 편을 보았다.
영화 <터널>은 집으로 가는 길, 갑자기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한 남자와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변해가는 터널 밖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자동차 계약을 따 내고 장미 빛 미래를 꿈꾸는 주인공 '정수' 앞에 갑자기 무너져 내린 '터널'은 현실의 거대한 벽이었다.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선한 의지를 가진 보통 사람, 영웅까지는 아니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모른 척하지 않는 소시민 주인공 '정수'를 통해, 영화 <터널>의 '무너진 터널'은 인간의 절망을 드러내며, 현실의 어두운 공간으로 의미를 확장시켜 관객들을 가두어 버렸다.
어떤 지면에서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의 '아무 잘못 없는 평범한 사람이 사회가 저지른 실수로 인해 재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며 '영화는 영화이고 현실은 현실이어야 하는데 요즘 현실에서 영화 같은 일이 너무 많이 발생한다. 그러한 사회에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러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쓴 연출의 변을 읽었다.
그의 말처럼 영화 속에서나 보던 재난이 현실 속에서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재난을 겪으면서도 영화 같은 현실은 변화하지 않고 있고, 대중들은 너무 쉽게 망각의 강을 건넌다. 이것이 우리의 부모 형제가 살고 있는 조국의 현실이고 내가 발 디디고 사는 사회의 오늘이다.
그리고 다음날, 이번에는 영화관에 들어가 어둠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싣고 마음을 조려야 했다. 영화에 빠져들수록 영화의 주 무대인 열차 객실과 열차 밖 재난 대처 상황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았다. 어린 딸과 임신한 아내를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와 남편의 모습으로, 혼자만 살겠다고 다른 사람을 좀비의 희생양으로 밀어내는 악역으로, 영화 속 인물들은 나와 우리의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영화 속 '부산행' 열차는 관객들을 세월호 앞바다에 데려다 놓기도 하고 메르스 사태 길목에 오랫동안 세워 두기도 했다.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사회에서, 의로운 이들이 온 몸으로 저항하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과정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 두 영화를 보면서 '죄란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인생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남긴 흔적을 망각하는 데 있다'는 어떤 일본 작가의 글이 기억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 졌다. 영화 <부산행>은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하고 영화 <터널>은 '나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한다. 개인의 존엄한 인격을 대하는 사회의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고, 경제적 가치를 우위에 두는 냉엄한 현실 앞에서 우리의 좌표가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있는 것이다.
영화 '부산행'에서 가장 약한 존재였던 두 사람만이 살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자신보다 더 살리고 싶어 했던 누군가의 마음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 '수안'과 새 생명을 품은 '성경'의 존재는 재난 속에서도 살아남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또한 영화 '터널'의 '간접 체험'은 현실에 갇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그 기억의 터널에서 생명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는 인간성을 하나 둘 씩 앗아갔다. 사랑과 희생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존엄성은 거대한 사회의 수레바퀴 아래 이미 매몰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 문맥에서 두 편의 영화는 급변하는 우리 사회의 숨은 민낯이다. 부산에 무사히 도착하려면, 터널을 안전하게 빠져 나가려면 어떤 숙제를 풀어야 할지를 다 같이 고민해 볼 일이다.
태엽을 감아 둔 시계가 저절로 서서히 풀리듯 어느새 가을이 문턱까지 와 있다. 모시자락 같은 잠자리 날개 위로 내려앉은 햇살이 눈부시다. 매일 새로운 시작 앞에 경건하고 뭉클하다. 돌아올 일상이 있어서 참 고맙고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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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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