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시간에 배운 직선의 정의를 아직도 기억한다. “두 점을 잇는 최단거리”였다. 그래서 두 점 사이의 직선은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생각해보면 저기까지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바로 가야하는 직선에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좀 슬프다.
나는 시간과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해야 하는 일들을 죽 늘어놓고 가장 적게 움직일 수 있는 동선으로 정리한다. 잘 안 맞으면 스케줄을 조정하거나 날짜를 미뤄서라도 최단 코스를 만들어 놓고 시작한다.
아이들 라이드를 하고 기다리는 시간에는 근처 짐에서 운동을 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뭐라도 읽으려는 생각에 책을 가지고 다닌다. 찜질방이나 사우나처럼 눈만 말똥말똥 뜨고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은 초조하기까지 한다.
한번은 한시간 단위로 세 번 피를 뽑는 검사를 해야 했는데, 그 사이에 운동을 하고 와도 되냐고 물었다가 혼난 적도 있다. 그렇다고 매 시간 집중해서 사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효율에 대해서는 강박 증세를 보이는 듯하다.
작년 여름, 강의와 컨설팅 프로젝트가 겹치고, 내가 속해 있는 비영리 단체 일이 실타래처럼 엉켜서 정신없이 일만 할 때가 있었다. 잠이 부족해 계속 컨디션이 안 좋더니 끝내 몸살이 심하게 났다. 원래도 건강 체질은 아닌데,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며 일하다 사나흘을 내리 침대에만 누어있게 되었다. 그 상태에서도 밀린 일들이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데…
결국 몇 가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에만 매달리자고 마음을 바꿨다. 훨씬 여유가 생긴 덕분에 나머지 일들을 집중해서 끝낼 수 있었다.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아파서 얻은 한 줄기의 여백으로 일의 퀄리티를 올릴 수 있었으니 효율 면에서 보면 더 이익이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전에 성악 레슨을 받은 적이 있는데 선생님이 비음을 섞어서 소리를 내보면 훨씬 듣기 좋은 소리가 될 거라고 했다. 어떻게 하는지 시범까지 보여줬지만 나는 그게 도통되질 않았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 무척 답답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 년간 완전히 쉬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노래를 흥얼거리다 그 논리를 깨닫게 되었다. 한순간이었다. 삶의 여백은 그 값을 한다.
최단 시간에 일을 끝내는 성취감도 좋지만, 마음 편히 산책을 하거나 명상을 할 때 느껴지는 행복감도 필요하다. 김난도 교수는 그의 저서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에서 “성취의 열망과 감사의 수긋함 사이에서 얼마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느냐에 우리의 행복이 달려있다”고 했다.
나 스스로에게 좀 더 너그러워져도 될 듯 싶다. 두 점을 잇는 최단거리가 아니면 어떤가. 조금 돌아서, 조금 더 걸려서 도달하는 곡선의 삶도 나쁘지 않다. 반듯하지 않아도 좋다. 때로는 돌아가고 쉬어가도 괜찮다. 오래 걸려서 그려 놓으면 더 아름다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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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조/ 마케팅 교수·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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