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 보전과 관광이득’에서 ‘자연 생태계 보전’으로 관점 전환
▶ 인접 국공유지·사유지와 통합관리론도 대두…‘개발’ 요구 저항도 커져
알래스카에 있는 미국 최대이자 세계 최대의 국립공원 랭겔 세인트 엘리아스.[미국 국립공원관리청 웹사이트]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국립공원 효시, 미국의 국립공원들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관리청(NPS)의 설립 100주년이 된 25일 미국 언론들은 이 기관의 설립을 축하하면서 남부러운 자국 국립공원 제도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그 역사와 현황을 돌아보는 글들로 떠들썩했다.
미국의 세계 경영을 주도하는 백악관이나 중앙정보국(CIA) 같은 권력기관도 아닌 국립공원관리청이 이렇게 애정 담뿍 담긴 언론의 관심을 받는 것은 100년 전 국립공원관리청의 출범 자체가 한 언론인의 주도로 진행된 범 언론사적인 운동에 힘입은 점이 큰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제1호이자 따라서 세계 제1호 국립공원인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1872년 지정됐다. 관리청이 생기기 전엔 국립공원에 따라 관리 주체가 내무부, 농무부, 전쟁부, 육군 등으로 어지러웠다. 1916년 관리청 출범에 앞서 당시 저명 언론인 로버트 스털링 야드가 국립공원을 통합 관리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일으키는 데 앞장서고 각 언론사도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이 의회의 입법에 주효했다고 타임은 설명했다.
뉴욕 도회지인으로 야생과는 거리가 먼 야드가 각계 유력 인사들과 대중을 설득한 관리청 설치론의 요지는 "우리 곁에 야생의 자연을 보전하면 야생은 우리에게 1천 배의 이익을 돌려준다"는 것.
그는 스위스가 그때 이미 "자연경관으로 먹고살고, 돈벌이하는" 점을 들어 미국의 국립공원들을 제대로 관리하면 "곧 어림할 수도 없는 경제 자산으로 변할 것"이라며 "우리는 세계 최대, 최양질의 경관 자산을 갖고 있고 이는 거대한 시장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이 '보전과 이득(감상, 휴양, 관광자원)'이 당시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출범의 배경이었으며, 이는 세계 다른 모든 국립공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면서 국립공원에 대한 인식에서 "혁명적 변화"가 자리 잡게 됐다. 국립공원 내 식물계와 동물계의 생태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해 자연상태의 생태계를 온전하게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두 인식 간 차이는 국립공원관리청의 인적 구성에서부터 드러난다. 옐로스톤 같은 거대 국립공원들의 경우 생물학자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을 채용하고 있다. 대학과 여러 연구기관으로부터 필요한 연구원들을 초빙하기도 한다. 공원 내 생태계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와 이해를 위해서다.
지난 2009년 관리청장이 된 조너던 자비스는 자신이 생물학 전공학자로, 관리청 사상 처음으로 상근 과학 자문관을 임명하기도 했다고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설명했다.
과거 국립공원의 경계선을 정할 때는 경관을 위주로 했지만, 오늘날엔 공원 내 이주성 포유동물들의 연중 서식지를 보호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이러한 서식지 파악을 위해서도 단순히 행정적 관리가 아닌 과학적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지구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서식지와 이동선 변화 등을 감안하면 국립공원 경계선을 넘어서는 관리 정책이 요구된다.
미국 세콰이어 국립공원에 있는, 덩치로 세계 최대인 제너럴 셔먼 나무.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웹사이트]
뉴요커는 국립공원관리청의 기후변화에 따른 임시정책이 올해 말 완성될 것이라며, 그 방향은 각 국립공원 측이 인근 국공유지와 사유지 측과 긴밀히 협력하도록 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립공원의 역할을 "국가 단위뿐 아니라 국제단위의 토지와 물 보호 네트워크에서 생태학적, 문화적 핵심"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최근 생물과학지에 실린 한 논문은 더 나아가 국립공원과 기타 보전지역을 통합해 하나의 공식적인 "국립 서식지보전계"로 지정함으로써 생물 다양성이 보호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여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로 이러한 구상에도 선구자는 있다. 1928년 요세미티 국립공원 관리청에 근무한 지 갓 1년 된 24세 청년 조지 멜렌데즈 라이트는 유산으로 받은 돈으로 비용을 자체 조달하면서 미국 국립공원내 야생을 장기 조사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야생 탐사용으로 트럭을 개조하고 2명의 동료를 고용해 국립공원관리청 최초로 국립공원들에 대한 포괄적인 탐사연구를 진행해 1932년 '미국 국립공원의 동물상'이라는 보고서를 출판했다.
이 보고서와 후속 보고서에서 그가 주장한 것은 야생의 포식자를 보호하며, 절멸한 생물 종을 복원하고, 가능하면 야생 생물들이 "생존 투쟁을 벌이는 것에 간섭하지 말고 야생 그대로" 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편엽서 속의 공원이 아니라 실제 기능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당초 국립공원관리청의 출범 배경이 됐던 '보전과 이득'이라는 인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는 자연을 보전하고 동시에 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고 즐길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양립할 수 없다고 봤다.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게 하려면 도로를 건설하고 숙박시설을 만들며 야생에 울타리를 치는 결과를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자와 사슴 보고 한 침상을 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게 라이트의 생각이었다.
야생을 인간이 즐기게 하는 게 아니라 인간 방문객들로부터 야생을 보호하는 데 주안점을 둔 국립공원 관리론은 1934년 국립공원관리청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됐으나 라이트가 2년 후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엔 1990년대 후반 부활할 때까지 동력을 잃고 말았다.
국립공원과 자연상태 국공유지 내 생태계 보전론이 강해지는 만큼, 반대로 경제적 이득을 위해 이를 개발하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국립공원 방문객이 지난해 3억7천만 명에 이르고, 지난 1월 미국진보센터(CAP)의 여론조사에서 국립공원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크다는 의견이 77%에 이를 정도로 미국 국민 사이에서 국립공원의 인기는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미 의회에 '반 국립공원' 성향의 의원 모임이 구성되는 등 국립공원과 국공유지의 자연상태 보호조치들을 제거하거나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강해지고 있다고 CAP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밝혔다.
CAP에 따르면, 2000년대 첫 10년간은 미 의회에서 공화-민주당 간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도 국립공원 문제에서만큼은 드물게 초당적 협력이 이뤄져 왔다. 그러나 지난 2010년 이후엔 개별 국립공원이나 야생 관련 법안이 통과된 적이 없다.
의회 안에선 수천만 에이커의 국공유지를 매각하라는 압력도 커지고 있고, 2013년부터 지금까지 3년간만 해도 국립공원의 자연보호 조치들을 훼손하는 입법안이 최소 44개나 제출됐다. 지난 1월 오리건주에서 벌어진 반정부 무장 시위대의 국립야생보호구역 본부 청사 점거 사태도 같은 맥락이다.
뉴요커가 "국립공원관리청 100주년, 그다음은?"이라고 물은 것은 미국에서도 자연 생태계 보전 희망과 개발 욕구 간 갈등이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임을 말해준다.
<연합뉴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