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이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서 프로필 사진을 바꾸었다. 의대 다니는 이 사촌동생은 몇 개월 전 자격시험 공부하느라 몹시 힘들어 했다. 그때 내가 힘내라고 보내준 튤립 한 다발을 안고 찍은 ‘인증샷’으로 프로필 사진이 바뀐 건 내심 뿌듯했다.
그러나 사진이 흑백이라 예쁜 꽃 색깔이 보이지 않는 게 아쉬워 “색칠된 네 모습이 보고 싶구나” 하고 댓글을 달았더니, 동생은 “하지만 요즘은 모든 게 다 흑백이야” 라고 응답했다. 나는 부인하고 싶었지만 사실 그런 것 같아서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 흑백 문제 혹은 색깔 문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미디어에서 심각하게 다뤄지고 있다. 한국에서 선거철이면 지역감정이 더 부각되듯이, 미국도 선거철이라 갈등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질적 갈등은 상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무고한 흑인이 경찰에 의해 부당하게 취급 받는 경우도 있고, 그런가 하면 절도를 용서하고 돌려보낸 10대 흑인 여자아이가 총을 들고 돌아와 가게 주인인 한인부부를 쏘았다는 뉴스도 있었다. 각기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아직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임에 틀림없다.
이 다름의 문제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현 20-30대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오늘 한 대학 후배는 첫딸이 생애 첫 유치원 입학시험에 실패한 것을 두고, 백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던 평가 위원회를 지적했다. “편견과 익숙함이라는 인지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민자 가정 자녀를 평가할 때) 발생하는 오류에 영향 받을 수도 있는 결과”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 어린 애들에게 합격 불합격을 선고한다는 자체가 사실 교육자로서는 수긍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삶의 곳곳에서 우리는 나와 피부색이 다른 백인과 흑인에 대한 나 자신의 편견과 싸우고, 또 내 피부색이 만들어내는 나에 대한 외부의 편견에 대해 고뇌할 때가 있다. 더 어려운 것은 후배가 지적했듯이 “편견과 익숙함이라는 인지적 한계”를 가진 인간으로서 나는 매번 일관성을 확보한 심리적 반응이나 합리적 생각을 도출해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더운 여름밤은 맥주에 재즈가 최고라 DC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 깊은 재즈 바에 갔다. 멋진 연주로 여름밤을 근사하게 만들어 주던 재즈 그룹의 드러머와 색소포니스트는 흑인이었다. 지난 4월 같은 재즈 바에서 전설적인 피아노 연주를 해준 램지 루이스도 흑인이다.
그렇게 멋진 연주들을 보고 들을 때 가끔 엉뚱한 생각이 들곤 한다. ‘저 훌륭한 연주자들이 어느 날 밤길에 내게 말을 건넨다면, 나는 긴장하지 않고 상냥할 수 있을까?’ ‘저 훌륭한 연주자들이 어디선가 백인 경찰을 마주한다면, 경찰은 저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황하지 않을까?’ 혹은 나아가 ‘저렇게 멋진 연주자인데 거리에서는 그냥 범죄자와 같은 흑인으로 취급되고 오인되고 총이라고 맞는다면, 그건 얼마나 큰 손실이요 슬픈 일일까?’ 그리고 다시 생각은 이어진다. ‘왜 나의 인지적 한계는 나로 하여금 이 멋진 연주자들의 피부색깔을 의식하고,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지나치게 민감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흑백의 문제는 영원한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사촌동생의 프로필 사진은 오래도록 흑백일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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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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