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습(時習), ‘배운 것을 때때로 다시 익힌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명언 집들이 즐비한서점의 한 켠을 바라보며 떠올려본 단어이다.
인용하기 쉬워서, 스스로의 지적 수준을 자랑할 도구가 될 수도 있는 명언집을 굳이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진부함’ 때문이다. 솔직히 들여다 보면, 그 뿌리는 교만함일지도 모른다. 아는만큼의 삶을 살지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아는 것’을‘ 살아내고 있다 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스스로를 기만하는 삶이라는 표현 은 너무 과할까.
정보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하는법’ 이라는 양식을 빌어 서로가 서로에게 정보를 주기에 바쁘다.정보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그 정보를 제대로 살아내고 있지 못하다면, 그와 같은 정보는 극도의 피로감을 줄 뿐이다.
끊임없이 섭취하지만 제대로 씹고 소화시키지 않는 음식물은 제대로 된 자양분이 되지 못한다. 즉,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나 지혜일수록 체화(體化)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 한줄의 명언을 살아내는것이, 수천 장의 명언집을 입에 달고 사는것보다 더 값진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얘 기다.
우리는 때때로 ‘반복하는 행위’를 경시한다. 무언가를 반복한다는것을 그 행위에 미숙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라 짐작해본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배운 것을 때때로 ‘다시’ 익힌다는 행위의 중요성을 이처럼 한 단어에 담아 기억하고 또 후대에 전달하려 했다. 말처럼 쉽지 않는 일이란 반증일지도 모른다.
종종 일상에서 지혜나 지식의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정보’는 아닐 것이다. 정보는 큰 노력없이, 간단한 클릭 한번으로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정보들을 제대로 익힌적 없는 개인의 게으름이다.
오늘도 이미 읽거나 들은적 있는 명언과 격언들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이렇게 글이나 말로 배운 것들을부지런히 경험하고자 하는 열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 비슷한 실수에 또다시 넘어진 자신과 대면하게 되리란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축적된 지혜와 지식들을 어떻게 몸에 익힐 수 있을까.그 첫 걸음은 질문이 생겼을 때,소위 성공한 주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진실로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자신에게서 끄집어 내는 작업으로도 일련의 깨달음을 기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더 나아가 많은 답들을 자신 안에서 발견하는 성공적인 경험들이 쌓이면, 공허한 세상의 소리가 아닌 솔직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일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며, 상관없는 타인의 결론보다는 능동적인 자신만의 사유의 장에서 개인적으로 더욱 받아들이고 적용 하기 쉬운 현실적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린 배운 것을 ‘다시’ 익히는 시습의 경험을 시작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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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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