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몇 년 살다 보면 어디서 총 때문에 사람 몇명이 죽었다는 뉴스쯤에는 꽤 익숙해진다. 불행히도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건이라고 하여 항상 무감각할 수는 없다. 얼마 전 UCLA 캠퍼스에서 박사과정 졸업생이 전 지도교수를 총격 살해한 사건은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너무 친숙하다. 박사과정 학생으로 내가 5년간 UCLA에서 지낼 때 사용하던 연구실 건물이 바로 그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꽤나 복잡한 구조로 많은 작은 연구실과 강의실이 있는 건물이다. 건물 앞에 한국 공대 유학생들이 종종 모여 있어서 누군가 ‘Korean Blvd’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건물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난다면 정말 아수라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공간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자명했다. 게다가 아직 공부를 마치지 않은 지인들이 사건 발생 당시 그 건물 안에 적어도 10명은 있었고, 길 바로 건너편에 교육대학 건물이 있으니, 학과 교수들도 몇 명은 연구실에 계셨을 것이다. 게다가 졸업생이 전 지도교수에게 총을 겨눈 사건인 만큼, 대학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황에 따라 불편한 사제 관계가 분명 있지만 졸업까지 잘했는데 2년 후 문제가 생겼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난 3년간 조교수로 대학원생을 지도하며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교수로서 때로는 학생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어(예를 들면 자격시험 결과) 가끔은 조심스럽기도 하다.
정서가 불안정할 때 실패에 대한 분노는 교수나 외부를 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학생들은 꽤 감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잘 아는 공간에서 익숙한 맥락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대륙의 반대편에 있어도 충격이 크다. 종일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뉴스만 멍하니 보고 있게 만드는 데, 이는 물리적 거리가 멀어도 심리적 거리가 매우 가깝기 때문인 것 같다. 세계인들의 관광명소, 파리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공격당했을 때, 플로리다의 나이트클럽에서 총기가 난사되었을 때 혹은 인근 쇼핑몰이나 학교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의 분노와 두려움은 극에 달한다. 이는 꼭 미국의 총기사건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강남역 화장실에서 여성에 대한 증오 때문에 불특정 여성을 살해한 사건 역시 그 장소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고, 갔던 곳이고, 내가 그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슬퍼하고 분노하고 행동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반대로 케냐에서 테러로 인해 대학에서 140명이 넘게 사망하고, 시리아와 요르단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미디어와 사람들은 파리 테러만큼 주목하지 않았다. 당시에 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적하고 비난했지만, 이는 우리가 특별히 파리 사람들의 목숨을 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은 덜 중요시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 봤던 곳, 가 볼 곳, 아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는 심리적 근접성이 훨씬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환경오염이나 테러, 혹은 다른 어떤 국제적 문제든 간에 사람들의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는 것이 공감과 행동을 이끌어 내는 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단, 성범죄자가 종종 심리적 근접성을 이용(?)해 ‘딸 같아서’ 그랬다는 이야기는 이제 제발 더 이상 안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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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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