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내 이야기를 곧잘 나누던 오래된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서로 연락을 하지 않는 조금 껄끄러운 사이가 되었다. 다툰 것은 아니니 공통의 친구가 있거나 정기적인 모임이 있거나 하면 그룹 안에서 만날 법도 하지만, 타지에 살다 보니 그런 기회도 없고 해서 어느 덧 해를 넘기도록 서로 안부를 전하지 않고 있다.
친구가 생기고 여차저차 하여 친구였던 사람을 잃기도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몇 번 만나자고 해도 반응이 없다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화가 났거나 서운했다는 것인데, 자신이 느끼는 바를 표현하지 않으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가끔 그 친구의 페이스 북에 들어가 보면 잘 지내고 있다는 포스팅이 올라오고 해서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20·30대가 그렇듯이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 데다, 그 친구는 사실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나가는 친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구의 페이스 북 포스팅을 계속 보다 보니 글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하나 있음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조금은 안타까울 정도로 반복적인 내용은 “좋은 일에는 격려를 해주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좋은 말 한마디 더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종류의 격려나 좋은 말을 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오랜 친구였으니 그런 긍정적인 지지를 해주었던 시기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친구는 오랜 꿈 때문에 계속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그 에너지를 끊임없이 주위에서 공급받으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의 감정적 지지를 그만두고 친구가 마음을 비우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을 종용했던 것 같다.
마음을 온전히 비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나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마음뿐이고 많은 것이 내 생각에 달려있다는 것이 마음이 괴로웠던 시절 내게는 위로가 되었던 탓이다.
하지만 친구는 그저 “넌 잘할 거야, 꼭 원하는 것을 이룰 거야” 라고 말해주고 맛있는 식당 찾아다니며 기분전환 정도 같이 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 자꾸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을 비우라며 법륜 스님 동영상이나 추천했으니, 그 관계에서 수요와 공급의 부조화는 실로 심각했던 것이리라.
사람마다 위로를 받는 부분도 위로를 하는 방식도 다르다. 나는 내 방식대로 위로하려 했던 것이고,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기대치에 못 미치는 내가 그녀는 서운했을 것이고, 나는 나대로 근본적인 위로를 하려 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원하는 바를 표현하지 않았던 그녀가 서운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녀가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은 건 내 문제 해결 방식이 많이 달라 자신이 원하는 걸 절대로 제공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느 소설가의 표현처럼 “자신의 인생을 경영해야 하는 인간은 천사가 될 수 없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며 이런 불일치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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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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