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총회가 2월26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때 국제사회가 나서야 하는 ‘보호의 책임’(R2P)을 주제로 패널토의를 하고 있다. 유엔 총회는 1974년 9월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들을 ‘아파타이드’ 정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유엔 대표단의 자격을 거부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활동을 금지했다.<사진=유엔>
`대북제재 결의 배격' 유엔헌장과 권위에 정면 도전
“안보리 권고에 따라 자격정지 권한” 헌장에 명시
1974년 남아공 유엔퇴출 결의안 채택 시도
총회의장 전체회의 표결 부쳐 유엔활동 자격상실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를 무시하고 또 다시 핵 실험 또는 탄도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원국 자격 문제가 본격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지난 10년이 넘게 유엔 총회와 안보리가 인권,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 채택한 모든 대북제재 결의를 “절대로 배격 한다”(categorically reject)며 유엔헌장과 권위에 정면 도전하고 있는데 대해 국제사회 인내의 한계선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헌장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945년 6월26일 채택된 유엔헌장(Charter of the United Nations)은 회원국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하고 제반 기관과 절차를 규정하는 ‘국제연합’의 ‘헌법’이다.
헌장의 전문(preamble)은 유엔의 설립 목적을 “기본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 및 가치”, “국제평화와 안전”, 그리고 “모든 국민의 경제적 및 사회적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로 밝히고 있다. 그리고 헌장은 이 같은 목적을 위해 “헌장에 규정된 의무를 수락하고 이러한 의무를 수행할 능력과 의사가 있다고 기구가 판단하는” 국가들에 한해 유엔 회원국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엔에는 현재 총 193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해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고 그에 따라 주어진 각종 권리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헌장은 유엔에 가입한 회원국이 의무는 무시하면서 권리만 챙기는 경우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회원국 지위
구체적으로 ‘회원국의 지위’를 다룬 유엔헌장 제2장 제5조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 취해진 방지조치 또는 제재조치의 대상이 되는 국제연합 회원국에 대해서는 총회가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회원국으로서의 권리와 특권의 행사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같은 장 제6조는 “이 헌장에 규정된 원칙을 계속 위반하는 국제연합 회원국은 총회가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기구로부터 제명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단 안보리는 5개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결의에 거부권을 갖고 있어 이들의 반대표 행사가 없는 결의를 채택해 특정 회원국의 지위를 정지하거나 박탈하는 조치를 총회에 권고한 전례가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실제로 안보리는 1974년 10월24일 “총회가 유엔헌장 제6조에 따라 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을 유엔에서 즉시 퇴출시킬 것을 권고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S/11543) 채택을 시도한 바 있다.
케냐, 모리타니와 카메룬이 공동 발의한 결의안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인종 차별•격리 정책인 ‘아파타이드’(apartheid)를 문제 삼은 유엔 총회와 안보리의 결의를 계속 무시함에 따라 추진됐다.
결의안은 ‘아파타이드’ 정책 자체가 보편적인인권선언과 유엔 헌장에 위배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 유엔 총회와 안보리 결의를 10년이 넘게 계속 무시하며 유엔 헌장 이행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엔 헌장에 따라 회원국 지위가 박탈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결의안 채택 노력은 토의에 이어진 표결에서 미국, 영국과 프랑스가 거부권을 행사해 좌절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1974년 10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유엔 회원국 지위 박탈을 추진한 결의안.
■회원국 자격
사실 당시 안보리의 결의안 채택 시도는 총회의 권고에 의해 이뤄졌다.
제29차 유엔총회는 1974년 9월30일 총회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유엔 대표단의 자격을 거부할 것을 권고한 ‘신임장심사위원회’(Credentials Committee) 보고서를 총회 결의 3206호 채택으로 인준했다. 그리고 같은 날 총회 결의 3207호를 채택해 “안보리가 유엔 헌장과 보편적인인권선언을 지속적으로 위배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유엔과의 관계를 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리가 상임이사국들의 거부권 행사로 대다수 회원국들의 입장에 역행하자 총회의장은 1974년 11월12일 앞서 채택된 총회 결의 3206호에 따라 “총회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단의 회의 참여를 거부 한다”고 선포했다. 총회 의장의 이 같은 결정은 총회 전체회의 표결에 부쳐져 찬성 91표, 반대 22표, 기권 19표로 확정됐다.
따라서 당일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들은 유엔에서의 활동 자격을 상실해 모든 유엔 활동이 금지됐다. 총회의 이러한 조치는 유엔 총회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민주적 선거가 치러짐에 따라 1994년 6월23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단의 자격을 다시 부여할 때까지 약 20년간 계속됐다.
■유엔총회 회의운영규정
안보리의 권고 없이 유엔 총회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유엔 회원국 자격을 실질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었던 권한은 유엔총회 회의운영규정에 근거한다. 회원국 대표단 자격을 다루는 회의운영규정 제4장 제27조는 모든 회원국들이 매해 유엔 총회가 열리기 최소한 1주일 이전에 대표단의 신임장과 명단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출토록 하고 있다.
그러면 총회는 매해 총회 시작에 의장의 제안으로 8개국 대표들이 참여하는 ‘신임장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는 제출된 신임장을 검토해 결과를 보고하도록 돼 있다.(제28조)
여기에 제29조는 만일 특정 국가 대표(들)의 자격에 회원국으로부터 문제가 제기됐을 경우 총회가 가부 결정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 제29차 총회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단 전원의 자격을 거부할 것을 권고한 ‘신임장심사위원회’ 결정을 받아들임으로서 안보리의 권고 없이 사실상 국가 자체의 유엔 회원국 지위를 정지당한 사례이다.
■북한 자격 문제
이와 관련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은 2014년 7월 안보리가 유엔본부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기 위해 개최한 ‘이라아 포뮬러’(Arria Formula) 회의에 참석해 “북한은 세계 2차 대전의 고통을 바탕으로 한 국제연합과 그 정의에 가입하기는 했으나 실질적으로 ‘생각과 마음’(mind and heart)으로는 가입하지 않았다”며 회원국 자격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특히 “누구로 태어나느냐에 따라서 차별을 당하고, 기회를 박탈당하고 심지어는 어디에서 살고 일해야 하고 앞날이 미리 정해지는 북한의 출신 성분 분류 제도가 바로 아프리카의 ‘아파타이드’와 다름이 없다”며 “회원국들이 북한의 노골적인 유엔헌장 위반 행위에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확실한 조치(자격 정지•박탈)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오준 주유엔 한국대표부 대사와 한충희 차석대사는 지난 달 안보리와 총회에서 각각 열린 공개회의에 참석해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계속 무시하고 있는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을 문제 삼았다.
<<유엔본부=신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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