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겨울 앞자락이 아쉬운 계절의 경계에 서성이며 금방 눈발이라도 몰아 올 듯이 사방 잿빛으로 물들이고, 쫓기고 달아나다 등 굽은 소나무에 걸터앉아 바르르 몸을 떠는 창문 밖 자작나무 잎새 하나 뜻 모를 미소를 건낸다.
한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소외되었던 투명한 기억들을 퍼 올려 사라져간 시간들을 다시 모아 펼쳐 본다. 처마 끝에 나란히 줄을 선 시래기무리가 서정을 불러 오고, 까치밥으로 남겨둔 돌담길 감나무가 추억으로 배달되는 보이지 않는 시간들도 틈새로 끼어든다. 오래오래 붙잡고 싶을 때는 아쉬움과 함께 훌쩍 떠나가고, 더 빨리 보내야 할 때는 질기게도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인연으로 다가 오기도 하고 이별로 사라지기도 했다.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기도 했고 길 위에 서서 날려 버린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달리다 걷다가 때로 느리게 움직여도 시간은 똑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동행하며 속삭이고 만져 주었다. 어떤 공간에서도 밀착되어 고통도 함께 하고 행복도 같이 누렸다. 그런데 한 해를 둘러보아야 할 이쯤에서 잠깐 이별이란다. 혼자서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서 아쉬움의 강을 만나고, 햇살 가득 행복했던 숲길도 다시 걷는다.
때론 흔들리는 나뭇잎 되고 상처 받은 나그네로 방황도 했지만, 마음의 새 옷을 입고 나서면 언제나 그 자리엔 새로운 희망이 같이 했다. 욕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반짝이며 그리움이 찾아와 달래 주었고, 무기력한 방패가 되었을 때는 견고한 사랑이 든든하게 지켜 주었다. 마음속에 묻어둔 꽃잎마저 메말라 무너질 때도 침묵하고 기다리는 지혜를 선물로 받았다. 세월의 수레를 밀고 걸어온 수많은 시간 --- 새벽을 노래하며 사라지는 노을빛에 쌓아온 언어가 아름답게 물들어 가길 기도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
시간은 삶을 허투루 인도 하지 않았음에도, 나쁜 기억과 후회스런 일들은 소멸할 줄 모르고 되돌릴 수 없는 과거로 자꾸 뒤돌아보게 한다. 옹졸해 지고 변명하며 과거와 맞서다 보면 하루가 티끌 같이 사라지고 굳은살 같은 겸손도 달아난다.
시간과의 약속시간도 점점 가까워 온다. 삶의 좋은 기억의 선택의 시간도 겨울을 준비한다. 요즈음에 읽은 책 중에서 살아가는 동안 지침처럼 마음에 담아 두고 싶은 글을 옮기며 한해의 마무리를 견고하게 하고 싶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근후 지음 “나이 들면 무서울 게 없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갖 일을 겪었다.
세상이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그러나 또 노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도 안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지금 알고 있으니 세상 무서운 게 없다. 젊을 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오는 막막함이 죽음보다 두려웠다. 그 때는 죽음이 먼 이야기였다.
나이가 들면서 내 인생이 어떻게 될까 하는 조바심이나 궁금증도 줄어든다고 한다. 슬퍼할 일도 줄어들고 자랑할 일도 작아진다. 흠잡을 일도 없고 흠 잡힐 일도 안 하게 된다. 결핍과 과잉의 저울질도 스스로 할 줄 알고, 성공과 실패의 잣대도 사용할 줄 안다. 주위 사람을 돌아보는 열린 마음이 되고 있는 그대로 내가 나인 것이 좋아진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모든 경우의 수를 감내하겠다고 생각하면 결정은 쉬워진다. 결단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다음을 고려하라. 최종 결정은 스스로 한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비교해 보라. 최악의 사태를 미리 예견해 보라. 멀리 보라. 좋아하는 일을 택하라. 쉬운 것부터 하라. 이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은 최종 결정은 내가 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아는 것, 그러면 인생은 조금 쉬워진다. 제일 좋은 것은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지만 완전히 잊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갖고 놀아라. 과거는 심심할 때 잠깐 불러내 가지고 노는 것쯤으로 생각하면 어떠한가. ”그런즉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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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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