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선 <수필가>
서둘러 달려가는 길은 잔잔한 설렘이었다. 붉게 물든 가로수 둘러선 골목길이 부지런히 따라 오고 한줄기 눈부신 석양에 고개를 떨군 자리에도 무르익은 가을빛은 요염한 자태로 내려앉았다. 만남을 주선한 지인의 집에는 이미 도착한 초대받은 사람들의 사각거리는 웃음소리가 집안 가득 앞마당까지 나와서 맞아주었다.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더러 낯선 손님들과 다정히 손을 잡으며 오늘 저녁모임의 향기를 예감할 수 있었다.
만남은 모양도 색깔도 다양하다.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같은 만남도 있고 , 함께 공존 할 수 있는 보배로운 만남이 있는가 하면 , 만남 뒤에 후회가 쓰나미처럼 몰려와 상처만 남는 잘못된 만남도 있다. 누구라도 진정한 만남을 갈망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앙금이 되어 마음의 빗장을 잠그기도 한다.
만남을 인연이라고도 한다. 좋은 인연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만 맺어서는 안 될 인연은 불행의 씨앗이 된다. 좋은 만남은 언어에 향기가 있어야 하고, 같이 있어서 행복하며, 무언의 모습으로도 여운이 감돌아 같이 있는 시간이 아깝지 않아야 한다. 이민 역사에서도 알아줄만한 훌륭하신 대선배님, 오랜 세월 동안 타국에서 자신의 삶을 가꾸어 오신 존경받는 어른들 , 교육가, 봉사자, 음악가 ……..
한 분 한 분이 모두 빛나는 존재감을 갖추신 전문가들이시지만 오늘은 인생의 선배로, 같은 하늘아래 살아가는 동행하는 이웃으로 자리를 함께했다. 서로의 높고 낮음을 샘하지 않고 마음의 벽을 허물고 나직한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며 넉넉한 가슴으로 노을 진 풍경을 그려가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지나온 시간의 아쉬움을 후회로 남기지 않기 위한 변주곡을 한 줄씩 번갈아 쓰며 부족한 부분을 같이 채워 나가며 자신을 되찾아 가는 시간이라 여기고 싶다.
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가을인가 하지만- 실은 진솔하게 우려내야 할 향기는 바로 내안에서 물들어 가는 가을이 아닌가 되돌아본다. 설익은 과실처럼 떫은맛을 감추고 위선의 보따리 하나 숨기고 가을을 따라 어디쯤 나도 가고 있다. 그 찬사 그 화려함 미련 없이 다 털어 내고 다시 꿈꾸게 하는 가을은 해묵은 나를 버리게 한다.
지나간 시간에 집착도 버리게 한다. 흙으로 돌아가는 근본도 가을이어서 쉽게 수긍을 한다. 살아온 만큼의 이야기는 길이도 다르고 부피도 다르지만 마디마다 구절마다 추임새를 넣다 보니 어느새 화음이 잘 맞는 노래를 같이 부르고 있지 않은가. 원래 세상살이의 정답은 각자가 다르지만.
그 다름이 결국은 하나가 되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연륜이라고 일컫는가 보다. 백발의 노교수님이”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하시는 해맑은 미소가 자연스럽게 인생 답안지로 여겨진다.
불빛도 포근한 거실에 두루 마주앉아 베토벤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소프라노의 낭만과 그리움을 노래하는 화려한 무대에 열렬한 찬사를 보낸다, 창조주를 찬양하는 테너의 성가곡도 가을 하늘 위에 거룩하게 올려 드렸다. 시와 수필을 낭송하고 연인들의 사랑노래도 같이 부르며 10월의 마지막 밤은 만찬으로 이어졌다.
가지가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따끈하게 다려 낸 차보다도 훈훈한 속살 같은 이야기들은 식탁 위의 꽃들 보다 다양하게 수를 놓는다. 한 땀 한 땀 새겨듣다가 가슴에 담아둘 편지 한 장 써 내려간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서 사는 인생은 언제나 후회를 남기지만 자신의 기준에 맞춰서 사는 인생은 최소한 후회는 없다. 수많은 아픔을 통해 우린 이제야 비로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임을 성공이 아니라 의미임을 깨닫기 시작했다.”한홍의 (시간 마스터) 중에서
당신들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함께 해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같은 방향을 보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 가을은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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