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중략…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라는 시이다. 요즘 들어 마음이 우울할 적마다 이 시를 음미하면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있으니, 나도 기도를 자주하는 셈이다. 내가 이 시에 꽂히게(?) 된 것은 어느 지인의 칠순 생일잔치에 다녀오고 나서 부터이다.
처음에 칠순 생일잔치로 시 낭송회를 한다는 연락을 받고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그 분이 평소에 써 놓았던 시를 발표한다는 이야기인가?”하는 추측만 할 뿐 어떤 자리인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1945년 해방둥이인 그 분은 전직 언론인으로 유신시대가 무너지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설 무렵 시카고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한 평생 글을 써오기는 했지만 투사의 이미지가 강했던 그 분이 평소에 시를 써왔다는 것이 의외라면 의외였다.
하지만 정작 그 자리는 자작시를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본인의 애송시들을 낭독하는 자리였다. 경상도 산골마을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 방황하던 대학시절, 엄혹했던 유신시절, 도미 후 신문사를 거쳐 흑인동네에서 옷가게를 하던 시절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구비구비마다 위안과 힘을 얻었던 시들을 낭송하며 그는 자신의 인생과 시를 반추했다.
그는 이날 수십 편의 시들을 모두 암송하여 참석한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 중에는 김소월, 노천명, 김영랑 등 우리가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인들의 시도 다수 있었다.
그때는 어려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시험에 대비해 달달 외우고 분석하느라 바빴기 때문일까. 당시는 건성으로 지나쳤던 시들을 다시 들으며 우리말의 아름다움, 시인의 빛나는 감수성과 혜안에 감탄을 했다.
칠순 잔치의 주인공은 시를 낭송하면서 간간히 그 시에 얽힌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그의 스토리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는 힘이 있었다.
나는 그날 생일잔치를 다녀오면서 다른 사람들도 이런 포맷을 차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굳이 암송하는 시가 없어도, 과거 행적 화려하지 않아도, 뛰어난 말솜씨가 없어도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남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장삼이사의 사람들일지라도, 아니 장심이사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인생의 구비구비를 돌아 왔고, 역경 속에서 다시 일어났던 “모멘트”가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러한 모멘트가 없었다면 그 분들은 결코 오늘의 자리에 있지 못했을 테니까.
자신의 스토리를 나누는 일은 듣는 이들에게 울림을 줄 뿐 아니라 말하는 본인에게 정화작용을 한다. 요즘 같은 시절에는 빛바랜 사진 몇 점만 있어도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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