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most wonderful time of the year.” 1963년 앤디 윌리엄스가 발표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지겹도록(?) 들었다. 추수감사절이 지나고부터 바로 라디오에서는 종일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왔다. ‘벌써 12월이구나’ 생각하는 순간, 시간은 어느덧 12월의 막바지를 달리고, 마음은 바빠지는데 무언지 모를 설렘과 허전함이 부쩍 급습하는 요즘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떠올리게 되는 중학생 시절 윤리 선생님의 말씀이 있다. 인간에게 ‘시간의 단위’가 없었다면 한 개인의 삶, 나아가 인류의 역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시간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던 때 듣고 ‘아!’ 하고 무릎을 쳤던 말이라 인상 깊게 남아있다.
간단히 말해서 오늘과 내일을 구분하는 시간의 마디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 길다면 긴 그래서 지겨운, 혹은 짧다면 짧은 그래서 덧없는 생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성찰이었다.
오늘은 나빴지만, 내일은 조금 더 나을 거라는 믿음. 오늘은 이만큼밖에 못했지만 내일은 더 열심히 할 거라는 다짐. 오늘은 슬펐지만,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 질 것이라는 희망. 믿음도 다짐도 모두 쉼 없이 흐르는 시간의 선 위에 놓인 마디들을 중심으로 생겨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연결되어 시작도 끝도 없을 것 같은 시간만 생각하고 산다면 (사실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희망이라는 단어는 대체 어디서 꺼내 들어야 할지 혹은 어떻게 꺼내 들 수 있을지 난감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이 시간의 마디들은 그게 분 단위이건, 개월 단위이건 상관없이 더 없이 소중한 기회의 순간들이 된다.
가족을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과 따듯한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방식대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한 해를 보내는 요즘 같은 시기는 특히 성찰과 희망의 카드를 꺼내 들기 적절한 지점이다. 함께 이 고달픈(?) 세상 같이 살아주며 평소 살아가는 모습 자체로 따듯함과 용기를 전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카드를 쓰고,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그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공유하는 이 시점이 새로운 한해를 열심히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고, 사실 내게는 그러하다.
안타까운 것은 연말이라는 이 시간의 마디가 허락하는 것들을 모두가 누릴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추운 계절에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절실한 이들이나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에 젖은 이들이나, 마음의 깊은 상처로 인해 모든 것이 마냥 슬프기만 사람들에게 연말의 성찰이나 희망은 사치가 되어 버리고, 끝없이 지독하게 괴로울 것만 같은 시간의 연속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마디 자체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 지난 한 해가 제대로 흘렀던 제대로 흐르지 않았던 이 시기에 꺼내들 수 있는 성찰과 희망의 카드를 내가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있다.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도 새해 인사를 외치는 시간의 마디에서 나는 “Why not?” 이라고 외치고 싶다. “It’s the hap- happiest season of all”이라고 앤디 윌리엄스는 올해도 어김없이 온 세상에 노래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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