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의 적막을 깨는 기타 소리가 오피스 주차장 구석에서 들린다. 화음이 조금 어색하지만 펑키 재즈풍의 음률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흑인 노숙자가 3번선(G선)이 끊어져 버린 기타로 연주를 계속 하고 있었다. 그의 아픔이 절규하듯 떨고 있는 기타 현 소리는 그의 애환과 소외된 무료함을 담고 있는 것 같이 들리고 그의 삶을 구성하는 한 현이 빠져 있는 것을 보는 듯했다. 젊었을 때 롱비치 대학에서 2년간 수학하며 그곳서 재즈 클래스를 수강하였었다고 했다. 남루한 옷차림에 생김새는 다저스 야구선수 헨리 라미레즈를 닮은 그는 58세의 흑인 노숙자이다.
1년 반 전부터 인접 빌딩들의 공동 주차장 구석에서 기거하고 있는 그가 처음에는 싫었다. 떠나주기를 바랐으나, 흐르는 세월 속에 대면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런 생각은 언제 부터인지 사라져 버렸다.
간간히 그에게 음식을 주는 이웃식당 주인과 마켓 종업원, 조용히 와서 머리를 깎아주고 떠나곤 하는 흑인 청년, 종종 그의 휠체어를 밀고 동네 한 두 바퀴씩 돌아주는 동료(?) 노숙자들의 정경이 보인다. 가난하지만 소박한 서민의 따뜻한 정겨움이 차가운 내 눈을 따습게 채운다.
이들의 영향인지 1년 전부터 나도 그에게 매일 이른 아침마다 음료수 한병, 그리고 컵라면이나 빵 혹은 과일 등을 건네고 있다. 이렇게 친숙(?)해지자 그는 자기 침구를 도난당했다고 하소연하기도 하고 한번은 돈 20달러를 내밀며 구세군에 가서 입을 옷 하나를 사다 달라 부탁하기도 한다. 나는 내가 입지 않는 옷, 창고에 쌓아 두었던 매트리스, 담요 등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쓰지 않던 것들이다.)
아침마다 3-4개의 큰 맥주 깡통이 그의 머리맡에 굴러다닌다. 변화를 위해 금연, 금주를 권유했던 나와의 약속은 아침마다 굴러다니는 빈 깡통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지금은 도시의 정글 속을 헤매고 있으며 언젠가 이 도시의 정글을 헤쳐 나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난 그날이 언제인지 헤아리지 않기로 했다.
현실을 생각 못한 내 철없는 센티멘털리즘인가, 씁쓸해 하다가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본다. 깨어진 약속에 실망할 만큼 베풀었을까? 충고가 실천으로 이어질 만큼 그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였을까? 아무 손해 없이 베푸는 동정과 다정한 말투의 충고가 피부에 와 닿는 진실성으로 보여 졌을까? 예수님이 “너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 6:21)”고 지적하셨듯이 재물이 따르지 않는 행동, 말의 동정, 기도 등이 과연 얼마나 그에게 진실하게 가닿았을까?
기타 3번 선인 G선을 구해주면 그의 음악상의 G선상 아리아는 해결 될 수 있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의 산문시 ‘투르게네프의 언덕’에 담겨있는 G선상의 아리아는 계속 우리 가슴속에 여운을 남길 것이다.
“나는 고개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 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거릴 뿐/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 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 된 눈으로 돌아다 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들끼리 소근 소근 이야기 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투르게네프의 이 언덕이 사랑이 담긴 자선이 넘어야 될 진실성이다. 이 아침에도 나는 이 언덕 밑에서 서성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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