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너도 나중에 자식 낳아서 키워보라”던 어머니의 말씀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적이 없다. 내일 모레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딸아이와 실랑이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공부하는 아이라 물감이며 붓, 온갖 그림 도구들로 벌써 보따리가 하나 가득인 아이 옆에서 된장이며 고추장, 멸치 보따리를 챙기며 구박(?)을 받고 있노라니, 30년 전 어머니와 내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쓴 웃음이 나온다. 어쩌면 그리도 똑 같은 모습을 재연하고 있는지… 이번에는 그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다.
당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낯설고 물 설은 땅에 딸을 보낼 생각에 이런저런 걱정이 많으신 어머니를 이해는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좀 더 “쿨 한 엄마”를 꿈꾸었던 것 같다. 아마도 마음속으로 “지금 이 마당에 저런 먹을 것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차라리 ‘너는 가서 잘할 거다. 난 너를 믿으니 별로 걱정 안한다’라고 말해주시면 한결 도움이 될 텐데요” 하고 중얼거렸던 것 같다.
하지만, 30년 후 똑 같은 상황을 재연하면서 입장이 바뀐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얘야, 세상에 자식을 떠나보내면서 ‘쿨한 엄마’는 없단다. 나는 네가 낯선 곳에 가서 겪게 될 이런저런 어려움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차라리 내가 대신 겪었으면 하는 심정이지. 하지만 엄마가 네 인생을 대신 살 수는 없기에, 몸이라도 건강하라고 이렇게 챙기는 거야. 이만큼 살아보니까 몸이 건강해야 어떤 어려움이든 버텨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
딸을 낯선 곳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한국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도 아프게 떠오른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잠깐 떠나보내는 것도 이렇듯 안타깝고 애틋한 데, 생때같은 자식이 눈앞에서 수장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온갖 부조리와 부정부패가 집약되어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고에, 정부의 무능한 대처로 무고한 시민이 300명이 넘게 수장되었는데,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피눈물나는 절규는 조롱과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흔히 세월호 피로감이라 말한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는가. 배 안의 승객들을 구조할 충분한 시간을 두고도(스스로 빠져나온 승객들을 제외하고는) 단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태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 처벌할 사람은 처벌하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게 하자는 것이 왜 진영논리로 환치되어야 하는가.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이들의 슬픔과 분노, 절망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자식가진 부모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설사, 사고의 경위가 제대로 밝혀져 책임있는 사람이 처벌을 받고 그간의 고통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진다 해도, 이들의 남은 삶은 단장의 고통으로 점철될 것이다. 아마도 보는 것, 듣는 것, 입고 먹는 모든 것이 자녀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그렇게 갑작스레 떠날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나중으로 미뤘던 약속이나 미처 못다한 말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내가 부모가 되어 보고 단언하건데, 세상에 쿨한 부모는 없다. 다만 시간을 두고 자신을 추슬러 가면서 쿨해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쿨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아마도 자신과 상대방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는 것,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세월호 유가족들이 자신과 남은 가족들에게 쿨한 사람, 쿨한 엄마 아빠로 돌아갈 수 있으려면 그 누구보다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이웃과 사회, 국가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 지금의 사태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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