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한 사회학자는 현대사회가 자랑하는 합리성이 근대화된 원근법적 시각체계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이는 화가가 그 자신을 중심으로 풍경이나 사물을 배치한다는 미술의 원근법 주의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상황에 대한 인식은 그 주체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상대성을 뜻하며, 때때로 우주적이고 보편타탕한 인식이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인간의 이기적 속성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도 사용된다.
즉, 비밀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구축한 이 가공할만한 정보화 사회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다분히 시각적이며, 자주적이자 주체적이기를 갈망하는 인간은 홍수와 같이 쏟아지는 시각적 정보들과 의도적으로 세련된 거리를 유지하고, 마치 그 모두와 무관한 초월자 혹은 조정자와 같이 행동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결과는 어쩌면 뻔하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만든 정서적 거리로 인해, 모두가 불가피하게 나름의 고립을 겪게 되는 것이다.
자기 신념이 마치 신앙과 같아지는 현 세태에서 발생된 이 고립은 함께 살지만, 결코 공생할 수 없게 하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만들어냈다. 대화는 난무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존재치 못하게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가정도 예외는 아닌 듯 보였다. 지난해 개봉해 화제가 되었던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이란 영화가 있다. 현대인의 위기 모형을 기어코 가족 안에서 끌어낸 이 영화는 ‘막장’이라는 영화 소개에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무안하고 때때로 불쾌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내 코미디로 맺지 않은 감독의 진지함 덕분에 많은 관객들은 차가운 현대사회가 낳은 냉혈한들의 이기적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회의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가족에게도 안길 수 없다면, 이제 나에겐 누가 남는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해와 용납의 장’이라 여겨왔던, 아니 그런 의심조차 불경하다 말하던 관습에 던져진 작은 조약돌이었던 것이다.
날마다 뉴스를 통해 보고 들으면서도 쉬이 믿겨지지 않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20일 가량이 지났다. 스크린 뒤에 숨은 제삼자로 차갑고 냉정한 기계음만 내놓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안으며 체온을 나누고 위로를 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개인적 성공을 논하던 거센 목소리들이 잦아들고 곳곳에서 ‘가족과 사랑’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가치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날마다 반복되는 작은 일상이 감사하고, 늘 옆에 있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문득 소중해진다는 말도 자주 듣게 된다.
현대인들을 서로에게서 고립시켰다는 원근법주의의 주체는 바로 자신이다. 진심과 용기를 가지고 열심을 내면 영혼 없는 댓글 대신 따뜻한 눈빛을 주고받을 수 있는 우리라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다.
큰 상실감과 슬픔에 잠겨있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나침반이 놓여졌다. 너무나 큰 희생으로 울려진 경종이지만 그로 인해 이제껏 흉하게 엇나가고 있던 우리의 현 위치를 돌아보게 됐다.
아직은 크나큰 혼란에 그 정확한 방향을 가늠하기는 힘들어 보이지만 적어도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한 바른 좌표를 위한 시발점이 되어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갖게 한다.
오랜 세월을 두고 철옹성처럼 쌓여온 고립의 무게이니만큼 결코 가벼울 리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태생적 이기심을 내세우며 스스로 만들어온 편견과 오해를 벗고 서로를 향한 좀 더 가벼운 걸음을 시작할 수 있는 의미있는 반환점이 되리란 기대를 조심스레 해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