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병인 코치’를 아시나요
▶ 중환자 돌보는 가족들 건강·애로사항 해결 도움 줘, 대부분 자원봉사자로 나이 지긋한 은퇴자들이 나서, 섣부른 조언보다 끈기 갖고 하소연 들어주는데 중점
몬테피오레 케어기버 서포트 센터를 운영하는 소셜워커 랜디 카플란(가운데)이 가족 간병인 자넷 립슨(왼쪽), 자원봉사자 데이브 월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드윈 파체카는 지난 수개월간 병원을 들락거렸다. 이미 한 차례 장기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또 다른 장기를 구해야 한다. 여느 중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신경줄은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언제라도 툭하고 끊어질 것만 같다. 죽음은 성큼성큼 거리를 좁혀 오는데 생명의 동아줄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불안하고 두렵다. 불편한 몸과 불안한 마음에 불쑥불쑥 짜증이 돋는다.
이럴 때마다 그의 유일한 화풀이 상대는 조강지처인 미네르바다.
미네르바는 늘 관대하다. 그의 짜증을 군소리 없이 받아준다. 남편이 얼마나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사와 직장 일을 동시에 챙겨가며 남편을 간호하는 그녀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들은 미네르바가 심하게 골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 한다. 아는 척 하자니 아무래도 뒷감당이 부담스러울 터이다.
지겹고도 끔찍스런 나날을 온 몸으로 버티어내며 힘겹게 이어가던 어느 날, 미네르바는 남편이 입원중인 뉴욕 소재 몬테피오레 메디칼센터의 중환자 병동 가족 대기실에서 ‘간병인 코치’를 자처하는 한 쌍의 자원봉사자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병원에서 흔히 마주치는 다른 자원봉사자들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우선 나이가 많았다. 대부분의 병원 자원봉사자들이 팔팔한 10대인데 비해 간병인 코치는 나이 지긋한 은퇴자들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간병인 코치 프로그램은 조금 별난 구석이 있었다. 은퇴자들 가운데 지원자를 뽑아 훈련을 시킨 뒤 그들로 하여금 거의가 중환자의 가족인 간병인들의 건강을 돌보게 한다는 것이다. 간병인이 건강해야 병구완을 더 잘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란다.
희망을 잃고 탈진상태에 빠진 간병인은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은커녕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들을 제대로 일으켜 세워야 환자가 편해진다.
그 날 중환자 가족 대기실에서 미네르바에게 접근한 두 명 가운데 한 명인 데이브 월피(69)는 고교 생활지도 교사로 재직하다 은퇴했다.
코치를 필요로 하는 간병인을 찾아내기 위해 온종일 중환자 가족 대기실 주변을 맴돌던 그는 온 몸의 진이 빠져나간 듯 보이는 미네르바를 보았다. 첫 눈에도 그녀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코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확실한 ‘간병인 환자’였다.
미네르바처럼 병든 성인 친척 혹은 친구를 간병하는 미국인들의 수는 줄잡아 수백만명을 헤아린다. 환자가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이들의 스트레스 수위는 더욱 높아진다.
이제까지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입원 중 가족이나 친구의 병구완을 받은 환자는 회복률이 높고 회복 속도 역시 빠르다.
반대로 간병인의 건강은 급속히 기울게 마련이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니 몸이 축나는 것이 당연하다.
간병인들을 위해 지원 단체를 운영하거나 소셜워커 혹은 다른 전문가들의 서비스를 주선하는 병원도 이미 상당수에 달한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간병 인구가 만만치 않고, 이들을 도울 단체나 조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병원 측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자원봉사 코치들은 기존 지원 단체나 소셜워커들과는 활동내용이 다르다.
코치의 주특기는 듣기다. 훈련과정에서도 듣기 훈련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성경에서 가르치듯 판단하거나 정죄하려 들지 않고 지칠 대로 지친 간병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이 이들의 최우선 과제다.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다.
코치는 간병인이 병원의 복잡한 의료 시스템을 헤쳐 나가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집중적인 훈련을 받는다. 커뮤니티의 어느 곳에서 간병인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
간병인은 환자의 상태에 관해 궁금한 것이 많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 줄 의사를 찾아주고, 이해하기 힘든 전문 의학용어를 귀에 쏙쏙 들어가게 풀이해 주는 것 역시 코치의 몫이다.
우울증세를 보이는 간병인을 전문가에게 연결시켜 준다거나 가족들이 환자의 간호를 얼마나 계속할 수 있을지 넌지시 탐색하는 것도 코치에게 주어진 임무의 일부다.
뿐만 아니다. 간병인이 환자의 상처부위를 씻어주고 배설물을 처리하는데 행여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체크한다.
코치들은 헬스케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야의 나이 지긋한 은퇴자들이다. 일단 코치로 ‘선발’되면 기본적인 훈련을 거쳐 현장에 배치되는데 몬테피오레 케어기버 서포트 센터에서 이제까지 배출한 코치는 모두 21명이다.
이들은 2인 1조로 짝을 지어 ‘관할구역’ 내 병원의 중환자 가족 대기실과 널스 스테이션 근처에 자리 잡고 지원 대상을 물색한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간병인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코치들이 먼저 찾아나서는 시스템이다.
몬테피오레 케어기버 서포트 센터를 운영하는 소셜워커 랜디 카플란은 “일반적으로 간병인들은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버거운 짐을 질 것을 요구받는다”며 “이들 대부분은 외부 단체나 간병인 코치와 같은 자원봉사자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월피는 간병인들의 경우 목까지 치민 스트레스를 풀어낼 분출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섣부른 조언을 하기보다 끈기 있고 주의 깊게 이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다 보면 어느 결엔가 상대의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며 흡족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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