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길에 홍콩을 경유하게 되었다. 머무는 시간은 약 세 시간 반. 그 정도면 공항에서 적당히 쉬고 기운을 충전하기에 넉넉한 시간이다.
홍콩에 내리자마자 공항 푸드 코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본식 라면을 깨끗이 비운 뒤 게이트로 향했다. 아직도 세 시간이나 남았으니 출장 중에 필요한 문서도 검토하고, 시간이 나면 보려고 저장해 두었던 영화도 한편 끝낼 수 있었다. 이만하면 자투리 시간을 아주 효과적으로 보낸 것 아닌가 자못 만족스러웠다.
드디어 게이트에 탑승 사인이 켜졌다. 빨리 들어가면 뭐해… 나는 미적거리며 줄을 섰다. 내 탑승권을 확인한 승무원이 말했다. “타시려는 비행기는 다른 게이트 입니다.”
그럴 리가! 몇 번을 확인했으나 내가 타야할 비행기는 공항의 반대편에 있는 게이트였고 출발 시간은 고작 20분 후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당혹해 할 새도 없었다. 트램을 타고 첫번째 정거장에서 내린 후, 지하로 내려가 또 다른 트램을 타고 제 2청사 6층으로 올라가 맨 끝 어디쯤이라는 승무원의 설명을 들으니 그 곳까지 가는 데만 20분은 너끈히 걸릴 듯 했다.
행동을 빨리 해야 했다. 1층으로 달려 내려갔는데 다음 트램은 10분 후에나 올 거라고 했다. 눈앞이 깜깜했다. 이 비행기를 놓치면 다음 비행기는 언제 있을지도 모르겠고 모든 출장 스케줄은 엉망이 될 것이 뻔했다.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트램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승무원이 지나가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타려는 항공사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그 승무원은 곧바로 연락을 취해 주었다.
해당 게이트 쪽에서는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한 모양이다. 트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는 자기를 따라 오라며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2청사를 가로지르는 두 사람의 달리기는 시작되었다.
근래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 운동의 결과는 매우 미비했다. 나는 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숨이 차올랐다. 어깨에 멘 랩탑 가방은 너무 무거웠고 홍콩 국제공항은 쓸데없이 컸다. 그리고 그 승무원은 유니폼을 입고도 너무나 잘 뛰었다.
그녀를 따라 나도 쉬지 않고 뛰어야 했다. 나를 위해 뛰어주는 그녀가 너무 고맙기도 했지만 공항 자체가 크고 혼잡해서 이 와중에 그녀를 놓쳤다가는 꼼짝없이 비행기를 놓칠 판이었다.
기껏 1마일 남짓 뛰면서 나는 마라톤 벌판에서 아테네까지 42km를 쉬지 않고 달려가 “이겼노라” 승전보를 전하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는 그리스 병사를 생각했다. 그 옛날에 태어났다 해도 나는 승전보를 전하느라 목숨을 걸고 뛰는 일 따위는 절대 없었을 것이다.
죽어도 더 이상은 못 뛰겠다 싶을 만큼 괴로워지기 시작했을 때 저 멀리서 게이트가 보였다. 나는 브릿지를 끊기 직전에 가까스로 탑승할 수 있었고, 나를 안전하게(?) 게이트까지 인계해준 승무원은 헐떡이는 숨을 참으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고마웠다. 그 동안 출장을 다니며 친절한 승무원들을 봐 왔지만 이번 같은 감동은 처음이었다. 본인 소속의 항공을 이용하는 고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먼 거리를 같이 뛰어준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나는 앞으로도 이 항공사를 종종 이용할 것이다. 그녀 덕분에 잠시 머물렀던 홍콩도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내게 베풀어준 친절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