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다. 시에서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그리 공감하지 못했다.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에서의 4월을 떠올리면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계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 4월은 나의 제자에게도, 그리고 그를 가르친 나에게도 잔인한 달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원한 대학으로부터 “다음에 다시 도전하세요” 라는 잔인한 편지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오르간을 전공했고, 미국에 온 후에 피아노 전공자가 되기 위해서 뒤늦게 피아노를 시작해 USC 대학원 진학을 꿈꾸던 학생이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만 학생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좌절하고 있을 제자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런 나를 놀라게 만든 건 그의 태도였다. “최선을 다해 가르쳐 주셨는데, 실망시켜 드려 죄송해요. 그렇지만 너무 걱정은 마세요. 저는 교수님과 일년을 더 공부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도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실패한 제자는 스승인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는 비록 오디션에는 실패했지만, 인생의 오디션이 있다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 생각됐다. 그리고 설사 그가 피아노 오디션에 계속 떨어진다 해도 그는 분명 이 세상 어느 한 곳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또 한 차례 입시의 계절이 돌아왔다. 나는 고민 끝에 그에게 스승으로서 현실적인 충고를 했다. 피아노를 늦게 시작한데다가 한번 실패를 경험했으니 올해는 경쟁이 덜 한 대학으로 지원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겸손한 모습으로, 그렇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교수님, 저는 올해에도 목표했던 그 대학에 지원할 생각입니다. 물러서고 싶지 않아요. 다시 도전할래요.”
나는 그의 ‘용기’에 감동받았다. 그가 또 한 번 고배를 마신다 해도 최선을 다하고, 또 다시 도전하는 용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값진 경험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결심을 지지해 주었다.
그 학생에게도 나에게도, 4월은 더 이상 잔인한 달이 아니다. 그는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의 용기와 도전 과정을 지켜봐 왔기 때문일까? 나는 합격소식을 듣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나를 보며 나의 제자는 “교수님께서 저보다 더 기뻐해 주시네요. 잘 지도해 주셔서 감사해요.” 말끝을 흐리는 그의 얼굴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글로벌 기업 HP의 CEO를 역임한 칼리 피오리나는 이런 말을 했다. “용기라는 말은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자의 몸으로 수많은 경쟁자들을 이겨낸 그녀는 늘 강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에겐 두려움이 없었던 걸까? 그녀는 ‘두려움’이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라 했다. 자신 역시 두렵지만 “좋아, 위험해도 한 번 해보자”라며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주체와 마주하는 것이다. 깨지든, 넘어지든, 우리가 넘어야 할 벽에 부딪치고 나면, 그 벽의 높이와 두께를 알 수 있다. 바라만 보다 뒤로 물러서기에 아직 우리는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다.
시작도 하기 전에 “거절하면 어쩌지? 실패하면 어쩌지?” 이런 고민은 되도록 짧게 하자. 부딪쳐 깨지더라도, 다시 빨간약을 바르고 일어나 다시 부딪치면 된다고… 나는 오늘도 제자들을 통해 진정한 용기와 도전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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