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지행 보살 가교역, 스탠포드 UC버클리 등 순방
봉황은 살아있는 풀 위에도 앉지 않는다고 한다. 살아있는 벌레를 먹거나 해치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오동나무에 살며 예천(醴川)을 마시고 천년에 한 번 열리는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는 전설의 새다. 날갯짓 한번에 수천리. 그런 봉황이 수만리 먼 곳을 향해 날아오르자 방앗간 참새는 주제넘게 긴장한다, 행여 제 앞 쌀 한톨 그걸 빼앗길까봐.
봉황의 뜻을 참새가 어찌 알랴 하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걸 참새들이 알아듣는다면 사람들은 사람들 뜻도 잘 모르면서 무슨 소리냐고 도리어 비웃을지 모른다. 전 삼보사 주지 범휴 스님 경험담이다. 몇년 전 LA 어디를 걷는데 우연히 마주친 한인이 핀잔인지 동정인지 모를 소리를 하며 지나치더란다. “거 참 장가도 못가고…” 한 비구니가 왕년의 유행가 ‘정주고 내가 우네’를 구성지게 부르는 장면이 유투브에 떴다. 많은 댓글이 달렸다. 개중 하나. “스님 무슨 사연이시길래…”이런 반응을 보인 보통사람들이 ‘벽안의 그 스님’ 이력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컴퓨터 회사 창립자 아버지와 생화학 박사 어머니의 아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낳고 자라고 가톨릭계 중고교까지 다니고, 게다가 학부는 예일대(영문학, 철학)에서, 대학원은 하버드대(비교종교학)에서. 그런데 머리를 깎았다. 속된 말로 중이 됐다. “아니 그런 집안에…아니 그런 학벌에…” 하지 않을까.
현각 스님(속명 Paul Muenzen, 사진) 얘기다. 자료에 따르면, 1964년생인 그는 1989년 12월 숭산 스님의 강연을 듣고 감동, 이듬해 케임브리지 선센터에 입문했다. 몇 달 뒤 한국행, 신원사 동안거를 시작으로 송광사 정혜사 각화사 봉암사 등 선방에서 용맹정진을 했다. 1992년에는 육조 혜능 대사가 모셔진 중국 조계산 남화사에서 계를 받고 출가했다. 공산체제 중국에서 출가한 최초의 서양인이라고 한다. 1996년에는 양산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고, 2001년에는 화계사에서 숭산 스님으로부터 공식인가를 받았다. 현각이라는 법명도 숭산 스님으로부터 받았다.
석달 합동참선(안거) 35차례, 백일 단독참선 3차례 등 치열한 정진 가운데서 그는 숭산 스님 설법집 세계일화(The Whole World is a Single Flower, 1992년). 선의 나침반(The Compass of Zen, 1997년),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 1999년), 깨달음을 원하는 것은 가장 큰 실수(Wanting Enlightenment is a Big Mistake, 2006년)을 영어로 엮어 출간했고, 서산 대사의 선의 거울(The Mirror of Zen, 2007년)을 최초로 영역했다.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자전적 이야기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수익금 전액을 숭산 스님의 무상사(계룡산 소재 국제선원) 건립에 보시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리투아니아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참된 배움을 전하고 있다.
저 위 ‘보통사람들’은 지금도 “아니 그런 집안에…아니 그런 학벌에…” 하고 있을까. 필시 아니다. 그의 뜻을 알아서일까. 대개는 그도 아닌 듯하다. 그들 눈에 현각 스님은 ‘치열한 수행자’보다 ‘색다른 유명인’으로 비쳐지는 것 같다. 정작 스님 자신은 학벌도 뭣도 다 버리고 가야할 길을 오직 가는데 보통사람들은 스님이 한참 전에 버려버린 학벌과 그 뭣만 뒤적이며 졸졸 따르고 있으니…. 이들을 깨우쳐주는 것 또한 스님의 몫인지 모른다. 스님은 자신에게 붙여진 여러 타이틀도 떼어내고 지도법사 이름표만 달았다고 한다.
현각 스님이 캘리포니아에 온다. 와서 비교적 오래 머문다. 머물며 법문하고 대화하고 함께한다. 4월 7일부터 28일까지다. UC버클리, 스탠포드 등 여러곳에서 강연이 예정돼 있다. 현각 스님의 가주행을 앞장서 추진한 이는 원지행 보살(속명 Helen Jones)이다. 스님과 보살의 몇년에 걸친 불연이 이번 방문으로 이어졌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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