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폐지를 줍다가 폐지 더미에 누워버린 늙은 등
죽은 줄 알았는데(죽었으면 좋겠는데)
다시 봄이라고 평상에 앉아 있습니다
어제는 때 지난 잡지 한 보따릴 쥐어줬더니
고물상 들러 막걸리나 마시고 있습니다
나무의 등에 소녀들이 칼집을 내는 계절입니다
고물상의 등이 부풀어 오르는 계절입니다
폐지 줍는 여자들에게도 계급이 있어요
등의 위치가 계급을 결정합니다
공동체 아닙니까, 공동체. 늙은 여자가
더 늙은 여자에게 말합니다
여기서는 전단지 한 장도 줍지 말라니까
징후만 있습니다. 누군가 죽을 것 같은 징후
구부러지고 또 구부러져서 고꾸라지기 직전인데
아무도 죽질 않습니다.
저 여자들의 등은 공동체의 피부입니다
또 밤이 오고 또 한 시즌이 시작되고
평상에, 각도가 다른 등들이 모여 있습니다.
-박진성 (1978-) ‘등’ 전문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도 계급이 있고 자리다툼이 있는 것일까. 아픔과 절망만이 살아가는 힘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저 가난한 공동체, 시 속에서 사람이 아니라 ‘등’이라 불리는 저들에게 봄이 오고 있다. 소녀들은 뼈아플 사랑을 시작하고 고물상은 폐기처분된 물건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꽃샘바람에 밟히며 풀꽃이 층층이 피어나듯이 쓰러지기 직전인 사람들의 몸속에서도 움찔움찔 새 시즌이 시작되고 있다. 대책 없이 그로테스크한 봄이다.
-임혜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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