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목사(북부 보스턴 한인연합감리교회)
지난 주 러시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피겨 여자 싱글에서 김연아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을 때 금메달을 딸 거라고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쇼트프로그램에서 러시아의 소트니코바 선수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아 김연아 선수는 은메달에 그쳤다. 한국 국민을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사람들은 심판이 공정치 못했다고 분노했다. 언론도 “금메달을 빼앗겼다” 또는 “도둑맞았다”고 보도했다. 해외언론조차 김연아가 더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김연아에게 금메달을 찾아주자”는 취지의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메일, 페이스북, 그리고 카톡으로 미국에 사는 교포들도 서명에 참여하라는 메시지가 왔다. 백만 명 이상 서명에 참여하면 재심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현재 몇 명이 부족하니 빨리 서명에 동참하라고 독려했다. 두 선수가 아이스 스케이팅 하는 장면을 보지 못한 사람도 이 서명에 참여했을지 모른다. 지난번에 김연아가 우승했고 그녀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무조건 김선수가 금메달을 따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가 더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서명운동으로 순위가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스피드로 순위가 결정된다면 몰라도 심판의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경기인데 항의한다고 결과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신문은 러시아가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고 비난하고 심판중의 한 사람이 양심 선언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요란하던 서명운동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끝났다. 서명운동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다는 소식은 전혀 없었는데 올림픽은 이미 폐막되었다.
김연아 선수는 경기가 끝나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자신이 은메달을 딴 것에 대하여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이 최선을 다한 것으로 만족하는 모습이다. 다행이다. 그녀까지 심판이 잘못했다고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을 것이다. 누가 더 잘했는가를 판단하는 일은 심판의 고유 권한이다. 선수들과 일반인들은 그들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어떤 선수가 우승한 것처럼 보여도 실격 되는 경우도 있다. 심판의 결정은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이다.
이번 동계 올림픽경기에 88개국에서 약 3,000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그 중에서 메달을 탄 선수는 300명 정도다. 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약 10퍼센트에 불과하다. 메달을 획득한 선수보다는 그렇지 못한 선수가 훨씬 많다. 김연아 선수 서명운동은 한국인이 얼마만큼 승리 또는 메달에 목을 매는지를 보여 주었다. 금메달이 아니라 메달을 전혀 획득하지 못했어도 모든 선수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은 메달 딴 선수들을 축하하고 그들의 승리를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때 일제고사가 끝난 후 며칠 후엔 성적순으로 학생들의 이름이 학교 벽에 게시 되곤 했다. 몇 백 명중에서 10등 안에 들면 잘했다고 박수라도 받아야겠지만 지난번보다 순위가 떨어진 친구들은 얼굴이 어둡다. 학교에서는 왜 학생들의 성적순을 공개하는 걸까? 자신의 성적을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서 다음에는 좀 더 잘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일까? 그러나 성적순을 공개하는 것은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학생들을 부끄럽게 하고 다른 친구들을 경쟁 대상자로 만들어 우정에 금이 가게 했다.
예수의 제자들도 경쟁심이 많았던 것 같다. 어느 날 두 제자가 와서 예수가 통치자가 될 때 자기들을 기용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 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마가복음 10:43-45)
한동안 설교를 잘하는 목회자를 보면 부러웠다. 왜 나는 저렇게 잘 하지 못할까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몸의 각 부분이 각자의 주어진 일을 다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어느 분야에서나 앞서가는 사람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를 많이 쓴다. 그러나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은 앞에 가는 사람보다 여유가 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일, 이등이 아니면 어떠랴. 그저 자신이 가는 길을 묵묵히 가면 되지 않을까?
이번에 은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를 비롯해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모든 선수들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난 4년 동안 얼마나 애 많이 썼던가? 불과 몇 분 또는 몇 십분 경기를 위해 그들이 치른 대가는 너무 크다. 비록 승리하지 못했어도 다른 선수에게 양보해서 메달을 따게 도와주었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누군가 뒤에서 가는 사람이 있어야 앞에 가는 사람이 있다. 진작 이런 생각을 했으면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 덜 괴롭혔을 것 같다. 내 손자들에게는 일등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꼭 가르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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