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도 큰 흥행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프로즌>을 봤다.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은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이다. ‘동화’란 사실이 전제하는 해피엔딩을 바탕으로 시작된 인생 미로 속에서 그들은, 길을 잃으면 잃을수록 화려하고 스펙터클해지는 매혹적인 아이러니를 선사한다.
여느 애니메이션들이 그렇듯, 주인공들은 먼저 다양한 삶의 어려움들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이윽고, 그 모두가 해소되는 인생의 결정적 순간과 조우하게 된다. 그 기적의 때는 ‘진정한 사랑의 행위(Act of true love)’를 만나 시작된다.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AlbertEllis)는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세상은 살기 쉬워야 하며,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누구나 내게 호의적이어야 한다”란 세 가지 믿음을 버릴 것을 권유했다. 모두 동화 같은, 비현실적인 믿음이라 할만하다. 그래서일까. 현대인들은 주저 없이 동화를 판타지로 분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화를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스토리의 비현실성보다는 뇌리와 가슴에 파고드는 감동, 그래서 동화에는 ‘꿈과 희망을 전해준다’는 식의 형용이 어색하지 않다.
동경과 부정, 동화에 대한 우리들의 이 같은 상반된 감정은 의외로 작지 않은 파괴력을 가지고 충돌한다. 그럼에도 동화에 여전히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되는 우리의 마음속엔 대체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프로즌>의 클라이맥스가 우주적이지만 다소 진부한 ‘진정한 사랑의 행위’로 귀결된다는 데에 어떤 힌트가 있진 않을까.
셰익스피어는 “그대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 문을 두드리고 마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라”고 말함으로, 우리 모두는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고 단정했다. 그의 말대로, 실체를 대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용납하는 일이 주저되어 우리는 애써 눈과 귀를 막고 고개를 젓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 <프로즌>의 주인공이 결정적 순간에 해야 했던 것은 동화 속에서만 등장할 수 있는 마법도 요술도 아닌, ‘진정한 사랑의 행위’였다. 평소 이미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진심을 확인하는, 솔직한 자아와의 조우,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기대하는 인생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을 시작으로, 그것을 위해 포기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후에 감당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마침내 그 다짐을 실행할 수 있는 용기와 이후 계속해나갈 수 있는 끈기와 노력이라면 동화의 현실화를 감히 꿈꿔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껏 동화 같고 영화 같은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며, 무수한 때를 스쳐 보낸 듯하다. 겉으로는 아직 온 적 없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차분히 돌아보면 아쉬운 몇몇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사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최근 출간된 자신의 첫 자서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배트가 강속구를 정확히 맞추어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구장에 울려 퍼졌다. 내가 ‘그렇지, 소설을 써보자’라는 생각을 떠올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날 진짜 그에게 찾아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미 그 마음속에 있는 것을, 오래 미뤄두었던 그 무엇을 향해 마침내 손을 내밀게 한 ‘용기’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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