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벌어진 2014 NFL 수퍼보울 경기에서 시애틀 시혹스가 덴버 브롱코스에 43대8 대승을 거두고 대망의 챔피언에 올랐다. 당초 전문가들과 팬들의 대체적인 예상은 브롱코스의 승리였지만 결과는 브롱코스의 대패였다.
커리어 최고의 정규시즌을 보내고 수퍼보울 우승 직전까지 갔던 브롱코스의 수퍼스타 쿼터백 페이튼 매닝으로서는 치욕적인 패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경기 후 매닝은 의연했다. 브롱코스가 범한 4차례의 턴 오버에 대해 동료들을 전혀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상대팀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기자회견장에서 매닝은 ‘쪽팔리지’ 않았느냐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에 침착함을 잃지 않고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겠다. 우리는 이 경기를 위해 열심히 준비를 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경기 후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사람들에 밀려 라커룸으로 들어가던 매닝은 한 경기장 맥주판매원으로부터 사인 요청을 받았다. 눈을 마주친 매닝은 “지금은 힘들고 나중에 나갈 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매닝은 물론 약속을 지켰다. 이 젊은 청년뿐 아니라 다른 팬들의 사인 요청에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성심껏 응했다.
이러한 매닝의 모습을 쭉 지켜 본 한 스포츠 칼럼니스트는 “매닝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평판에 어떤 흠집도 입지 않았다”고 논평했다. 상대팀인 시혹스의 수비수 리처드 셔먼도 수퍼보울 다음날 아침 한 토크쇼에 출연해 “경기가 끝나자 매닝이 나에게 다가와 발목 부상은 괜찮은지를 물었다. 상대팀 선수를 걱정해 주는 이런 모습은 그의 겸손과 품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에서 패배는 언제나 쓰라린 법이다. 특히 정상 일보직전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성숙한 패자라면 패배의 쓰라림을 이겨내며 자신을 꺾은 상대에 진심어린 축하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6년 전 베이징 올림픽 유도경기에서 오스트리아의 파이셔 선수가 보여줬던 성숙한 태도는 아주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뇌리에 남았다. 결승에서 한국의 왕기춘에게 패한 파이셔는 자신이 패한 매트 위에서 환한 표정을 지으며 승자인 왕기춘의 손을 높이 들어줬다. 지고도 환한 웃음을 지을 줄 알았던 파이셔는 더 이상 패자가 아니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승자의 환희뿐 아니라 아름다운 패배를 좀 더 많이 보고 싶다.
인간의 밑바탕은 최악의 순간에 드러나는 법이다. 평소에는 그 바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 자신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상대에게 잘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을 똑같이 대하기란 어렵다. 2일 밤 매닝이 최악의 순간에 보여준 의연함과 배려는 왜 그가 팬들과 동료선수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수퍼스타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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